“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나면 코끼를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개념의 창시자쯤 된다. 심리학자 최인철의 『프레임』은 인간의 인지적 무의식에 관한 탁월한 대중서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말한 『대중의 지혜』에 설득당한 사람들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 앞에서 주춤거린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합리적인가.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하자면 지혜로운 성자는 못 돼도 어리석은 군중은 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고 우리는 대체로 필터 버블에 갇혀 착각 속에 살아간다.
겸상도 힘들다는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돈에 울고 사랑에 속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속고 의식에 또 속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 종의 한계다. 문화인류학자, 인지심리학자, 진화생물학자들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이제 뇌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다 시끄럽고 내가 ‘과학’으로 증명해 줄게!
2011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이글먼의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들은 건 믿지 말고 본 것도 절반만 믿으라는 애드거 앨런 포의 충고가 뇌과학에 기반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감각을 인지하는 뇌의 착각과 한계는 여러 분야에서 검증이 끝났다. 독자들에게 남는 의문은 “그래서?” 세 글자다. 뇌과학은 어떻게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지만 개별 독자의 생각과 현실 변화 가능성 앞에서 매번 냉소를 날릴 수는 없다. 알지 못하면 문제를 인식할 수 없고 해결책은 더더욱 난망하다. 사는 대로 생각하며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위로를 주고받다 죽는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고 비 오는 토요일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게 아닐까.(물잔과 콜라잔도!)
그것이 숭고한 대의나 거창한 이타심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삶의 변화와 타인과 세상에 관한 통찰을 얻기 위한 이기적 목적일지라도 확증편향을 의심하는 눈빛,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태도, 어차피 죽을 거지만 피자에 꿀을 찍어 먹어도 무알콜 음료는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모였던 기억이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과학이 곧 사실일 수도 없고 실험 결과나 통계 분석도 주관이 개입된다는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저자들에게 경의를! 허나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들며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탄생과 소멸에 대해, 아니 각자의 삶에 자유 의지와 의식이 미치는 영향의 한계를 점검하는 정도면 넉넉하다. 보니 엠이 다들이불개고밥먹으라던By the rivers of Babylon 노래 소리가 아련한 일요일 아침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기쁨과 슬픔을 감당하며 인지적 무의식에 속지 않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산다고 믿는다. 그 선택과 방향이 비록 원하지 않는 길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