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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눈물이 움직인다
  • 손택수
  • 11,700원 (10%650)
  • 2025-05-28
  • : 3,147


우주를 고독하게 날아온 돌이

지구를 파고들며 타오르듯이

갈 수 있을까 당신에게로

마주 보면 눈을 맞추는 글썽임

_「운석 찾는 사람」중에서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던 김연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을 지났다. 익숙한 시인들도 이제는 그 그림자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읽는 손택수의 시집에 담긴 사유의 흔적,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손짓,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동경,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뭉쳐버린 폐지처럼 나뒹굴어도 어쩔 수가 없다.

저녁을 짓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

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

공깃밥이라는 말 좋지

무한을 식량으로

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

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

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

저녁의 이름으로

빛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시간, 매일 저녁이 지겨울 무렵에 문득,

혹시 내년 여름에도 수국을 볼 수 있을까.

수국

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피어나는 수국은

내 헛된 비유들에 대한 위로 같은 것,

꽃을 시늉하는

궁리에 궁리 끝의 작위여

작위의 찬란이여

헛것이라면 참으로

헛헛한 속을 달래는 헛제삿밥의

고봉 같은 것이 있어

수국은 피어난다

나의 삶도 가설

나의 말도 헛것만 같을 때

지는 것이 꽃이라고,

아닌

꽃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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