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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헌법 제1조, 파시즘을 쏘다:
  • 박홍규
  • 16,200원 (10%900)
  • 2025-04-18
  • : 460


기자는 임명직이 아니다. 자격시험도 없다. 그러나 언론은 유형, 무형의 권력을 누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레거시 미디어는 비판과 감시 기능 대신 행정, 입법, 사법 혹은 자본 권력과 공생 관계를 이뤄, 아니 기생한 지 오래다. 인터넷과 함께 뉴미디어 시대가 열렸고 순기능과 역기능이 혼재하는 현실에서 필터링은 이제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듯하다. 필터 버블 현상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는 길들어진 관점으로 살 수밖에 없다. 비판적 사고력은 주체적인 삶을 위한 필수 도구다. 생각의 근육은 헬스장에서도 기를 수 없다. 학력과 상관없는 사유 능력과 판단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과 사법부의 부패는 공화국을 위태롭게 하지만 그들의 거대한 카르텔은 진영의 논리로 해결하기 어렵다. 감시와 처벌은 요원하고 제 기능을 상실한 공권력의 해악은(아니 그 제도를 운용하는 자들이 스스로 권력기관이라 착각하는)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흔들고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쩌면,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기득권의 공고한 암묵적 카르텔보다 무서운 건 그 카르텔에 편입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경쟁이 아닐까. 상식과 공동체의 질서는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대체로 상식과 진리는 단순하고 간명하다.

변화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온건주의자와 혁명가들의 충돌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영을 넘어 삶의 태도와 방향으로 나타난다. 직업과 나이, 성별과 지역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이성적 판단 능력과 논리적 사유의 문제다. 허나 현실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현상에 대한 관점과 인과 관계가 엇갈리면 더 이상 토론과 합의는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의 합의로 굴러가는 민주정과 법치는 보이지 않는 ‘선line’이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는 단순한 관점의 차이다. 오프사이드offside 룰을 어겼는지에 관한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으나 오프 사이드 라인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를 수는 없다. 타인과의 갈등,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범죄를 ‘해석’의 문제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질서를 위반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일 확률이 높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근대 국가의 틀을 형성하면서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합의한 하한선, 마지노선, 최저선이 헌법이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합의에 해당한다. 링 위에서 상대 선수의 귀를 물어뜯은 타이슨도 있고, 박치기로 상대 선수의 코피를 터트린 축구 선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패배자가 되고 더 이상의 게임은 무의미해진다. 현실이 스포츠와 같을 수는 없으나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과 갈등 국면에서 각자의 억울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헌법이 그 판단 기준이라면 현상과 사건을 해석하는 헌법재판소는 또 어떤가. 또다시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환원되는 걸까.

온 국민이 헌법을 공부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각자 ‘해석’해 보자. 이 문장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의미일까. 유행처럼 출판된 헌법 관련 책들이 차고 넘친다. 법과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읽어 온 사람도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다. 박홍규 선생님의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겠으나 ‘파시즘’이라는 키워드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살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15개국의 헌법을 살피면서 다시 한번 정치가 아니라 각자의 삶과 현실을 점검해야 한다. 법은 법률가들의 소유가 아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과 합리성을 바탕에 둔 법률이 아니라면 언제든 수정 가능한 약속에 불과한 법의 적용 문제는 무지의 베일이 적용돼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을 각자 점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숨 쉬는 공기는 물론 내 몸의 뼛속까지 정치적이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언제든 바꿀 수 없다면 자기 도그마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비교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적 관점을 갖게 하는 것이고, 이로써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여러 가지에 내재하는 공통된 보편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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