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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역사를 읽는 법
  • 류시현
  • 18,000원 (10%1,000)
  • 2024-05-27
  • : 831


이진숙이 『인간다움의 순간들』에서 “개인은 자기를 기록함으로써 태어난다.”라고 썼다. 어떤 블로그의 인상적인 기록 혹은 일기 혹은 단상들을 읽다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적이 있다. 나탈리 제인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를 읽을 때처럼 미시사의 관점으로 한 개인을 통해 시대와 문화를 읽었다. 학창시절의 나이브한 귀여운 감성뿐만 아니라, 김연수의 말대로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버린 청춘의 고민, 자책, 방황, 불안에 이어 성장과 인정 욕구에 이르는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의 독서일기처럼, 오랜 시간 공들여 적은 누군가의 일상과 기록 그 많은 흔적들이 한 ‘개인’을 완성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역사다.

그렇게, 역사는 대단한 위인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지 않는다. 내가 아이였을 때 『플루타크 영웅전』은 읽은 적이 있다. 천병희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로저 에커치의 『밤의 문화사』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는 세종과 나폴레옹처럼 뛰어난 개인뿐 아니라 이완용이나 히틀러처럼 저열한 개인의 충격과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채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생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친 류시현의 『역사를 읽는 법』은 감동 그 자체다. 역사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관점, 즉 사관史觀에 따라 전혀 달리 해석 가능하다. ‘사실은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출토된 문화재, 텍스트로 남은 기록 등 숱한 사료를 재구성하고 연결지어 그들(he)의 이야기(story)를 만드는 작업이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류시현은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법, 역사를 보는 관점과 태도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결국 역사는 기록된 자료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물론 사건의 인과관계를 살피고 시간 순서와 주고 받은 영향을 살펴 재해석하는 일이 독자 개인에게 버거울 수 있으나 주체적인 인식의 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모든 지식은 ‘동료 압박’이라는 착각과 검색 정보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대개 대중적 역사서로 출판되는 책들은 재미와 가독성, 이면의 진실, 엇갈린 해석에 관한 것들이라면 류시현은 역사란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과거의 기록으로서 텍스트가 아니라 오늘, 여기를 사는 우리의 문제를 살피라고 요구한다.

흔히, 역사를 ‘오래된 미래’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살아숨쉬며 오늘을 만들고 미래를 꿈꿔야 한다고 요구하는 듯하다. 기원과 시간성, 시대적 맥락과 시기 구분, 사료의 선택, 우연과 필연, 해석과 관점, 인물의 평가, 역사교육과 상상력 등 각 장은 에세이 형식으로 저자의 소회와 경험이 녹아 있어 감성 독자든, 인문 독자든 모두에게 감동과 통찰을 줄 수 있다. 독특한 형식과 서술이라서가 아니라 저자의 ‘진심’은 좋은 책을 만드는 기본 요소다. 강만길의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님 웨일즈의 『아리랑』, 이사벨라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등을 읽으며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에 만났던 이야기들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 사이의 공감 때문도 아니다. 자기 삶에 열정을 다한 이의 겸손과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계속 여러 책을 읽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역사가의 역할과 임무가 무엇인지에 관해 여전히 고민하게 된다.” 이제 환갑이 된 역사가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겸손한 태도와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이 없는 책을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은 없고 책은 많다. “역사학자가 되었지만, 인문학자가 되고 싶었다.”라며, “문제에 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책을 준비했는데, 갈증이 심해져간다.”라는 고백이 가장 마음에 드는 개인적인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해와 공감은 관점과 태도에 기인한다.

생각을 유연하게 하고 싶다. 생각이 유연한 것은 균형 감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삶, 나의 판단, 나의 결정 등을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맺음말,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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