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늙고 모두 죽는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선택의 영역이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고 해도 삶의 목적과 가치, 방법과 태도는 오롯이 개인이 선택한다. ‘성공한 삶’, ‘만족스런 삶’의 기준도 다르지 않다. 그 선택과 기준에 따라 ‘좋은 삶’이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전제를 부정할 수 없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만큼, 아니 때로는 좋은 삶보다 더 중요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불로장생의 꿈은 유토피아처럼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인간의 꿈이다. 그러나 노년과 죽음을 피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이앤 렘은 80이 넘은 나이에 ‘나의 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여러 사람에게 묻는다. 남편이나 아내와 사별한 사람, 말기 암 환자와 주치의, 호스피스 종사자, 존엄사 지지자와 반대자 등 스물 세명의 인터뷰이에게 저자는 ‘죽음’을 묻는다. 아니 죽음에 대한 태도와 방법을 질문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보다 쉽지 않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노화방지 혹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비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없다. 대개 나이로 생의 마지막을 짐작하지만, 죽음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마이클 헵의 말대로 평소에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응급실, 중환자실, 각종의료기기, 요양병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공식처럼 여겨지지만, 당사자, 가족, 주변인들의 생각과 감정은 제각각이다. 나, 너, 우리 죽음은 어디까지 왔을까. 가족과 친구, 연인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타인의 죽음을 앞에서 삶의 허무 대신 ‘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36년 동안 300만 명이 넘는 청취자가 <다이앤 렘 쇼>를 들었다. 탁월한 진행자였던 저자는 팟캐스트와 북클럽을 운영하며 지낸다. 존엄사 지지자와 반대자들의 생각을 모두 담은 이 책은 가십거리 예능이나 현란한 말장난으로 가득한 팟캐스트와 결이 다르다. 사려 깊은 태도로 ‘의료조력사망’의 관점, 정책, 문제, 대안을 고루 다룬다. 미국 오리건 주가 최초로 자발적,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한 법률을 채택한 건 1998년이다. 이후 개인이 ‘의료조력사망medical aid in dying’을 이용해 자신의 고통을 언제 중단할지 선택하도록 허락한 곳은 현재까지 겨우 열 개 주와 워싱턴 DC뿐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아래 몇 개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의료조력사망’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안락사와 조금 다르다. 의사조력자살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구체적인 범위와 방법에 대해서는 문화, 종교, 나이, 직업 등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고통 받아야 하는 순간이 ‘나’에게 닥쳤을 때를 생각해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책은 어떻게 죽을지에 관한 ‘방법’의 문제를 다룬다.
‘의료조력사(조력존엄사)’라고 하면 어감이 좀 다를까. 존엄사라는 말은 좀 나은가. 대한민국은 드디어, 올해 말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 인구는 지난해 말 993만 명에서 올해 말 1051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19.2%에서 20.3%로 상승하는 것으로, 5명 중 1명이 고령자라는 의미이다. 연금, 정년, 주택, 의료, 복지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연계된 ‘초고령 사회’ 진입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이 늙고 있다.
이에 비해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 명이며 가임기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한 해 30만명 정도 사망하는 대한민국에서 20여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교육, 경제, 국방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곧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줄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과정은 반복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디쯤 걷고 있을까. 각자의 나이, 종교, 직업, 학력, 재산 등에 따라 죽음을 맞는 방법과 태도가 다르겠지만 아름다운 마무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고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면 서둘러야 한다. 인구 감소만큼 심각한 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는 바로 ‘죽음’이다.
“내 가족, 주치의, 병원에 전합니다. 제가 정신적 또는 육체적 장애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인위적인 방법과 거추장스러운 수단들을 동원해 제 목숨을 연장하지 말고 죽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최후의 시련을 다스릴 수 있는 약물을 자비롭게 투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 임종 순간을 앞당기더라도 말입니다. 저를 아끼는 여러분들이 이 절박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이라고 느끼면 좋겠습니다.” - 320쪽
81세의 저자는 앤 모로 린드버그의 말을 인용하며 공감과 지지를 보낸다. 그러면서 마지막 인터뷰이로 다트머스 대학 의대생인 18세 손자 벤을 선택한다. “나는 의료조력사망이 필요하다고 믿고 나한테는 내가 죽을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난 그렇게 죽고 싶단다.”라며 이 책을 마무리 한다. 지식이 실천이 되고, 앎이 삶이 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