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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페르세폴리스
  • 마르얀 사트라피
  • 28,800원 (10%1,600)
  • 2019-06-03
  • : 3,003

이란 남부의 고대 유적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지명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리엔탈리즘만큼 위험한 옥시덴탈리즘이 서양 혹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듯 한 몸처럼 움직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면 중동 혹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구별 없는 편견은 또 우리 안에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이란 여자 마르얀 사트라피의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는 크게 두 개의 층위를 드러낸다. 중동을 부분과 전체로 구별해야 하는 관점, 중동 안에서 또 다른 개체인 여성 차별의 관점. 이란의 ‘강남좌파’라 할 수 있는 테헤란 북부 좌파 마르지(작가)는 혁명과 전쟁 혹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피해 유럽으로 도피(유학)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여성이다. ‘3루’에서 태어났으나 히잡을 쓰고 홈베이스를 향해 슬라이딩을 해야 하는 불리함을 극복하는 정도라고 하면 지나칠까.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통해 70여 년간 이어진 분쟁의 실상을 실감나게 표현했던 작가들과 달리 마르지는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보여준다. 흑백의 담담한 그림체는 선과 악,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유럽과 중동, 근본주의와 민주주의 등 양립할 수 없는 이란 사회의 갈등과 충돌을 이분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1969년생 외동딸이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의 동시대인이지만, 어떤 인생은 그 자체가 그대로 한 편의 소설이며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미국의 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생중계로 시청한 세대에게 각인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처럼, 한 이란 여성의 일상과 경험으로 중동의 문화와 전통, 종교와 차별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훌륭한 한 편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은 내밀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지는 “일단 한계를 넘어서면,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웃어넘기는 것이다.”(275쪽)라는 말로 개인의 무력감을 표현한다. 목숨을 건 일상적 혁명과 종교적 도그마에 매몰된 근본주의자들의 만행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까. 이념과 종교로 포장된 권력과 정치세력은 놀랍게도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명분으로 챙긴 실리 때문일지 모르겠으나, 더디게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도 어느 순간 도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목도했다.

마르지는 단순히 현상의 나열에만 그치지 않는다. 4년 동안 경험한 서구문화는 이란의 전통문화와 충돌을 일으키며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다. 일반적인 사춘기 소녀와 다른 시간을 통과한 마르지의 경험이 단순히 부모의 사랑과 올곧은 태도로 극복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단 한 번의 인생을 산다. 타인의 그것을 대리 경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공평하다.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목적과 방향을 가늠하지만 태도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페르세폴리스를 통해 이슬람 문화와 전통을 조금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마르지의 선택과 고민이 어디를 향하는지 눈여겨볼 수도 있다. 물리적 공간만 다를 뿐, 어쩌면 전쟁 같은 일상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혁명은 자전과 같아서 바퀴가 멈추면 끝장이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넘어지면 깊은 상처를 감당해야 하며 남은 길은 어떻게든 스스로 페달을 밟아 나가야 한다.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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