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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
  • 폴 몰런드
  • 18,900원 (10%1,050)
  • 2024-05-07
  • : 1,131

“인구의 결과는 다양하고 지속적이며 심층적이지만 그 원인 역시 마찬가지다. - 19쪽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2022년에 비해 7.7% 감소했다. 인구 절벽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현실이다. 1959년~1971년생은 동갑내기가 100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이제 은퇴 시기를 맞는다. 대한민국은 급격하게 늙는 중이다. 결혼, 육아, 주택, 사교육, 연금, 노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개인은 아무도 없다. 각자도생을 위한 몸부림조차 무의미해지는 시대를 맞았다. 정부의 대책, 사회적 책무, 개인의 선택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는 듯하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며 세습 자본주의를 공고히 하는 세상에서 결혼과 출생은 곧 특권이 될 수도 있다. 누가 감히 이 험한 세상에서 행복을 꿈꾸는가. 디스토피아를 예견했던 숱한 소설과 영화는 미래에 대한 경고로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되고 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폴 몰런드의 ‘The Human Tide’(『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는 제목으로 인해 오해받기 쉬운 책이다.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뤄야 할 인류학의 보고서다. 지나간 역사로 한정하거나 치부될 수 있는 ‘세계사’라는 협소한 제목이 안타깝다. 오랜만에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났다. 새로운 관점, 알지 못했던 정보, 현실 적용 가능성, 실천과 변화를 위한 고민이 모두 담겨 있어 직업, 나이, 성별, 세대와 무관하게 진지하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구’는 역사적 사건과 문명사의 변화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변화를 이끌고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인과관계를 뒤바꿔 생각했던 편견을 버리자. 거대한 인구 물결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출생과 사망, 결혼과 이주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는 한 인구는 역사의 경로를 결정할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인구는 밀물과 썰물처럼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해왔다. 인구 물결 혹은 인구 전환은 언제나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예정이다. 물론 인구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인구의 변화와 흐름이 인류 문명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동안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의 삶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폴 몰런드는 출산율 하락의 원인으로 ‘경제 발전, 여성 문해율 상승, 도시화’을 꼽는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은 시대에 인구 문제는 못 배우고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으나 자연스러운 인구 감소가 초래할 미래는 밝지 않다. 인위적으로 인구를 늘리자는 대안과 거리가 먼 이 책은 앵글로색슨인, 독일과 러시아, 1945년 이후 서구와 동구권, 일본, 중국, 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까지 지구 곳곳의 인구 변화와 그 영향을 톺아본다.

부록으로 수록된 기대수명, 합계출산율 산출 방법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의미를 간과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인구 소멸은 괜찮은지,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 장기적인 대책은 무엇인지 묻는 듯하다. 인구 문제는 정부에만 맡겨놓기에는 너무 중요하지 않은가. 아이는 온 마을이 키워야한다는 오래된 금언을 되새기며 출생, 육아, 교육, 취업, 주택, 연금, 노후 문제까지 폭넓게 전 생애의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행복한 삶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으로 읽힌다. 어쩌면 이 책은 미래의 꿈과 희망에 대해 묻고 있는건 아닐까.

인구 고령화와 인구 후퇴를 겪는 일본의 상황을 반면교사 삼지 않으면 우리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아니 이미 그 길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는 오래된 미래다. 단순히 옛날엔 그랬었지 정도의 회고담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인구’의 안부를 물을 때다. 저자는 단순하고 일원론적이며 결정론적 역사관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토닥임에 현혹될 때가 아니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 없이 원빈처럼 오늘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미래에 어떤 일이 기다리든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인구와 인류의 운명은 앞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을 것이다. 출생과 사망, 결혼과 이주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는 한 인구는 역사의 경로를 결정할 것이다. - 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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