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메시지는 사실 간명하다. 호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남 사람들이 스스로를 직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 27쪽
그러나, 책의 메시지는 간단하지 않다. 조귀동의 전작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보여준 문제의식은 계층 간 불평등을 넘어 지역으로 옮겨간다. 대한민국의 가히 ‘인종차별’이라 할만한 전라도에 대한 편견과 해묵은 차별은 어디에서 기인했던 것을까. 단순히 정치인들의 투표전략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건 저자가 광주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베용어인 ‘전라디언’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을 제목으로 내세운 건 출판사의 전략인지, 핵심을 비껴가지 않겠다는 저자의 의도인지 알 수 없으나 이 책은 전라도에 대한 심층적인 사회학적 보고서다.
우리는 흔히 특정 지역, 특정 세대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무감각하다. 계층과 계급 문제를 세대 갈등으로 치환하며 불평등과 빈부격차의 문제를 비껴가듯 특정 지역과 세대, 성별 문제를 비틀어 범주화하는 언론과 정치권의 언어를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저자는 거시적으로 전라디언의 탄생 배경을 살핀다. 핵심은 물론 정치다. 사회, 역사적 배경을 찬찬히 살피면서 전라도가 어떻게 소외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이용되었는지 분석한다. 대다수 국민이 아니라 일부 국민의 편견과 오해로 치부하기엔 전라도 출신이 겪은 불공정과 불이익의 객관적 수치가 너무 분명하다.
조선일보 기자의 전작, 세습 중산층 사회에 대한 관심도 놀랍지만 보수의 반대편인 전라도에 대한 분석과 관심은 단순히 광주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의 분석대로 지역을 탈출해 중산층에 편입했거나 계층 사다리를 뛰어 넘은 전라디언의 정치, 사회적 이념 지형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의 흑인 또는 아일랜드 인이라는 자극적인 1장부터 매우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어법으로 ‘지금-여기’ 우리가 대한민국을 톺아본다. 설국열차의 꼬리칸이 아니라 산업화 열차의 꼬리칸에 올라타기도 힘들었던 지역의 경제 상황, 민주당과 결부되기까지의 정치적 배경을 들여다보는 1~3장이 외부에 해당한다면 4장~6장까지는 부패와 무능의 도시가 되어버린 광주와 지방 토호세력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중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언에 해당한다.
호남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것인지 고민하는 에필로그는 추상적 담론으로 읽힌다. 구체적인 현실 분석은 디테일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행 선거구제 개편, 지방 분권에 대한 논의, 균형 발전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없다. 정책 제안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밝혔듯 자성의 목소리에 방점을 두고 있으나, 그건 전라도 출신 저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일 터. 근본적인 문제는 저자의 지적대로 이중 차별과 지역내 계층과 계급에 따른 이해관계의 타파에 있을 것이다. 이는 전라도를 넘어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정 지역에 대한 자극적 문제의식을 외면하지 말고 논의의 출발로 삼았으면 좋겠다. 정면으로 응시하며 긴 안목으로 바라봐야 그나마 조금씩 해결책과 의미있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을까.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 전라디언, 복합쇼핑몰로 벌어진 세대와 계층간 견해차가 바로 문제의식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한 이상향을 실현한 시대도 국가도 없다. 다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고민하는 사람과 편견과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독자가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이런 접근 방식과 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계급 이익에 충실한 투표, 이해관계에 따른 이념 지도가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심화시킬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왜, 우리는 추상적 정치 선동과 언론에 대한 비판 의식이 부족한 걸까.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흘러가는 구름처럼 생각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강한 사람들이다. 무지보다 무서운 편견과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