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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사랑한 것은 그의 명랑과 기품이었다. 루시를 보고 있으면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이 느껴졌다. 앳되고 아름다운 생명만이 누리는 독특한 광채가 있었다. 꽃이 핀 정원에 해가 뜨면 처음 한두 시간쯤 목격할 수 있는 그런 광채였다. 

 지적이고 느긋한 녹갈색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렇게나 즐거운 세상인데, 왜들 그렇게 애를 쓰시나?’ 

그는 매일매일 한결같이 즐기며 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씩 정원의 꽃을 가꾸었다. 목욕을 한 뒤 어디 다녀올 데라도 있는 것처럼 신중하게 셔츠와 넥타이를 골라 옷을 입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질 좋은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단 한 순간도 담배의 풍미를 놓치지 않으며 마을로 걸어갔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집을 떠나기 전에 코트에 꽃도 한 송이 꽂았다. 건강과 단순한 즐거움, 푸른색과 금색이 섞인 음악대 유니폼을 제이컵 게이하트보다 기꺼워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쩌면 그는 해버퍼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리라.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카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했다. 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바깥세상이 어둡고 끔찍한 곳인 것만 같았다.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그라면 세상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이 행동할 것 같았다. 분명 많은 것을 겪어보고 많은 것에 능숙한 사람만 지닐 수 있는 담백함이 있었다. 그의 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속 깊은 종을 두드리는 듯해서 듣지 못하는 것까지 전부 느낄 수 있었다.

“있지요, 이 작은 빨간색 깃털이 길 위로 동동 떠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참 좋더라고. 부러 찾아본답니다. 안 보이면 정말이지 실망스러울 거예요. 루시는 추운 거리를 걷는 게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인 것 같은 얼굴이던데. 어느 책에선가 몽테뉴가 그랬지. 앳된 청춘기에는 생의 기쁨이 발에 있다고. 루시를 보고 있으면 그 구절이 생각나요, 루시. 잊고 살았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매력을 칭찬하면 끔찍한 효과가 발생한다고 믿었기에) 절대 진심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 루시를 웃겼다. 

그는 삶을 편안하게 즐기는, 어쩌면 삶을 즐김으로써 참아내는 사람 같았다.

다만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더욱 충실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자기 것을 취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거부할 힘을 찾아낸 듯했다.

해리는 일종의 정신적 근시가 있어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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