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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의 다락방
  • 1984
  • 조지 오웰
  • 13,320원 (10%740)
  • 2021-12-08
  • : 1,335

<1984>는 기묘한 책이다. 읽어보지 않고도 책 속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감시자 '빅 브라더'는 대부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조지 오웰의 예언적 디스토피아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거의 1세기 전에 출판된 이 책은 개인 정보, 온라인 검색 알고리즘 추적이 일상화된 2026년에 읽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현재적이다. 


종이 위에 뭔가를 기록한다는 것을 결정적인 행위였다.

-pp.15

첫장면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모든 행동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을 등지고 일기를 쓰고 있다. 오세아니아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그는 핵심당원 오브라이언이 자신과 당에 반하는 무언의 가치관을 은밀히 공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오세아니아는 상시 전쟁 중이고 그 상대는 유라시아나 동아시아와 어디여도 상관없다. 여기에서 전쟁은 잉여 물자를 처리하고 사회적 긴장감을 만들어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으로 기능한다. 당은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하며,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실제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를 편의에 맞게 갱신하고 있고, 그 일에 윈스턴은 연루돼 있다. 알지만 알지 못하는 것의 이중사고는 사상으로 저지르는 반역조차 엄벌에 처하는 이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 시민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상의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2 더하기 2가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다. 


유부남이었던 윈스턴은 사상경찰이라 의심했던 젊은 여성 줄리아와 금지된 사랑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그들의 밀회의 장소가 됐던 곳에서 체포된 이후 그는 자신의 사상적 동료라 믿고 의지했던 오브라이언에게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며 결국 지배적 당론에 자신의 의지와 반해 항복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인간이 육체적 고통 앞에서 얼마나 비겁해질 수 있는지를 읽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결국 이 끝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이나 이상적 가치를 내던지고 연인까지 배신하게 되는 윈스턴의 전락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게 되는 것들에 대한 하나의 예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실에 맞닿아 있다.


'최후의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던 윈스턴이 우리가 숱하게 접해왔던 현실을 뛰어넘거나 영웅이 되는 주인공 서사에 대한 기대를 보기 좋게 꺾어 버리는 장면은 서글픈 현실의 축도이기도 하다. 여기에 낭만적이거나 로맨틱한 반전은 없다. 이 건조하고 잔인할 만치 인간의 위선과 위악, 유약함을 증언하는 거친 이야기 사이 윈스턴이 이따금 회고하는 어린 시절 가난한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슬픈 삽화는 윈스턴이 결국 그 최후의 인간이 되지 못한 하나의 애조 띤 복선으로 자리한다. 조지 오웰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갈피짬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사랑을 바랐지만, 서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없을 만큼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가진다는 게 그 사람의 성장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게 되면, 삶은 결국 정치 행위와 동떨어져 얘기될 수 없다.


더는 책을 읽거나 스스로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 되지 않는 시대에서 단어를 폐기함으로써 사고를 제한하는 이 디스토피아가 가지는 무시무시한 위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좋은 책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해 주는 책"이라는 문장은 조지 오웰의 1984가 그 전범이 됨을 보여주는 말 같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인간에게 자유는 그 무엇보다 근원적인 존재 기반이 된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읽고 쓰는 일은 그 존재의 무게추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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