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곡점, 능선을 넘었다. 이제 미래를 향한 생각보다는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 반추가 가지는 의미도 달라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에 얽매였다면, 이제 내가 가지는 성취감, 아쉬움, 상실감 모두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그 어떤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력해서 가졌다고 누렸다고 여기던 것들조차 그렇다. 실패했다고 여겼던 것들은 더더군다나 그렇다. 예전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맹신이 있었다면, 이제는 회의적이다. 즉, 한 사람이 그 인생에서 주체적으로 많은 것들을 선택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됐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도발적인 책이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을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다고 가스라이팅하는 자기 계발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책처럼 보인다. 저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생물인류학을 전공하고 현재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및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과학 저술가다. 이 책은 과학책의 외피를 입었지만, 사고 실험 같은 철학서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환경적 운이 누적되어 어느 순간에 이르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장부터 새폴스키는 이렇게 선언하고 시작한다. 이후부터는 이 선언문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자유의지가 들어설 여지를 허락하는 아니, 강력히 비호하는 카오스 이론도 창발적 복잡성에 이르러서도 결국 1초 전, 1분 전, 심지어 수 세기를 가로질러 그것을 가능하게 한 선행 원인과 이유가 등장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생물학적 원리의 여백에 존재하는 것들에 자유 의지가 설 자리는 없다. 진화, 창발성, 카오스 그 어디에도 인간의 주체적 의식적 선택과 의지가 발휘된 순간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력을 우리의 의지로 키울 수 없다. 그럴듯한 행동도 심지어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난동조차도 우리의 뇌 속 전두피질의 기능과 관련되어 일어난다. 뉴런 사이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로 반응한다. 유전적으로 타고 난 생물학적 취약성은 운 나쁘게 나쁜 환경과 만나 증폭된다. 운 좋게 우월한 유전자와 만난 좋은 환경은 그 사람의 운을 더 증폭시키기도 한다. 감정 표현도 지적인 언설도 통증도 감각도 다 우리의 자유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그 어떤 범죄자도 위인도 그들의 범죄나 공적을 처벌하거나 상찬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진다. 새폴스키도 이런 자유의지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이 급진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과대평가한다고 해서 이 세상이 더 도덕적으로 성숙하거나 살기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더 많은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고 해서 그 사회가 성숙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배의 선장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이 두꺼운 책의 중심 테마다. 즉, 우리는 생각보다 더 무기력한 존재다. 더 열심히 살라고, 더 노력하라고 밀어부치고 성취를 개인의 업적으로 실패를 개인의 것으로 환원하는 이 자본주의 전장에서 결국 모든 것에 선행하는 원인들이 겹겹이 있다는 이야기다. 아쉬운 점은 그 이후에 대해 얘기하겠다는 그의 약속은 지켜졌다고 보기 어렵다. 자유 의지가 없는 인간이 이후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새폴스키는 변화는 이루어질 수 있다, 식으로 뭉뚱그린다. 이것조차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결국 인간의 삶이 가지는 의미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유 의지에 대해 착각하는 숱한 오해들과 비과학적 맹신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명쾌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한 대목들에는 절로 감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