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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의 다락방
  • 사나운 애착
  • 비비언 고닉
  • 13,500원 (10%750)
  • 2021-12-22
  • : 4,494

누구나 자기 인생은 나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가족 관계의 서사 또한 그렇다. 특히나 부모와의 관계는 그 특유의 긴장, 갈등, 애증이 교차되는 드라마의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모녀, 모자, 부녀, 부자 관계의 이야기가 고대부터 거듭 서사화되고 가장 많은 에세이의 소재로도 소환된 이유다.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읽는 이의 공감이나 감동을 얻어내기는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진부해지기 쉽고, 지나치게 극화되기 쉽다. 삐끗하면 함정으로 미끄러지기 쉬운 글감이다. 이제 내가 어머니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모두가 귀 기울여주는 시대는 아니다. 비비언 고닉은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다시 시도한 셈이다.


<사나운 애착>은 중년의 딸과 노년의 어머니가 뉴욕 거리를 함께 걷는 현재와 브롱크스의 다세대 주택에서 보낸 십오 년 유소년기의 세월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유대인 공산주의자 어머니의 딸에 대한 애착은 끈적끈적하고 사납다. 어머니는 교과서 같은 결혼생활의 버팀목이 됐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 애도의 세월, 영리하고 조숙한 딸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하고, 자신보다 더 내밀한 친밀함을 교환했던 이웃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질투를 드러내기도 한다. 저자 비비언 고닉은 그런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하고, 거리를 두고 싶어하면서도 반복해서 곁으로 돌아간다. 


나는 엄마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내 위아래에 있고 내 바깥에 있고 나를 뒤집어봐도 있다.


나도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았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 진부한 선언은 사실 나만의 것이 아니다. 엄마의 내게 특별하게 좋았고, 특이하게 나빴다, 고 생각했던 모든 부분이 비비언 고닉의 목소리로 제대로 묘사됐다. 즉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던 거다.  비비언 고닉처럼 나도 어느새 엄마를 고스란히 닮아가고 있다. 내가 실패라 여겼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생의 각인에 불과했다는 앎 또한 내가 특별히 뛰어난 선각자라서가 아니라 생의 주기가 몰고 온 자연스러운 교훈에 불과하다는 걸 매일 체감한다. 

우리 모두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평범하게 실패하다 스러져갈 수밖에 없다. 


"나는 엄마의 인생 저장소야, 알잖아."


비비언 고닉이 어머니와 나누는 맛깔스러운 대화들은 인생의 투명한 유리창을 통과한 아포리즘이다. 모녀가 마침내 확인하고 타협한 적절한 거리를 오고가는 말들. 


"인생은 어렵다."


그 어려운 인생에서 함께 있는 그 찰나 같은 시간들이 직조한 이야기를 제대로 잘하는 게 얼마나 큰 교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그 둘의 인생 저장소의 문을 닫고 나오는 마음이 감동으로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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