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 있어요?"
무료배송이 되지 않는 한 권의 책은 되도록 동네서점을 이용하기로 하고 있다. 모든 책이 항상 있는 건 아니라서 전화로 일단 물어보고 없을 경우 주문 후 하루, 이틀을 기다리는 시스템이다. 때로는 불편하고 느린 이 상황에 익숙해지려 한다. 손끝에서 바로 반응하는 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 한다. 다만, 문제라면, 내 발음이 별로 안 좋은지, 대체로 전화를 받는 직원은 재차 책 제목을 확인한다. 그 과정이 때로 민망하다. 이미 이 책을 찾기 이전부터 그랬다. 옆에 있던 다 큰 아이는 그럼 작가 이름부터 이야기해보라 시킨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바로 알아듣고 주문해 주기로 한다.
"뾰"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말이다. 대체 뭘까? 예전 문학동네 웹진에서 백은선 시인의 에세이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나서 난다 출판사 시의적절 시리즈에서 시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내심 반가웠다. 시인의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그녀의 삶과 그녀의 시를 분리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을 발견할 때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울림을 받는다.
처음부터 좋아서 다시 되돌아가 읽기도 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더없이 치열하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글을 직조하는 문장의 무게는 각기 다르다. 쉽게 쓴 글은 들킨다. 모를 수가 없다. 어렵게 고통스럽게 하나하나 공들여 쓴 글은 읽는 사람이 가장 먼저 그 자장을 감지하게 된다. 이 에세이는 긴 산문시 같다. 특히 시를 쓰는 시인의 삶의 무게라는 것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이다지도 무겁고 가혹하고 때로 환희에 찬 것이구나, 하면서.
나도 시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고등학생 백일장 때 매번 쓰는 산문이 지겨워서 아무말 대잔치격인 시를 썼다. 써놓고 보니 제법 내 눈에 그럴듯하게 보였다. 작문 선생님이 내 시와 나보다 어린 남학생의 시가 경쟁했고 이왕이면 어린 친구 손을 들어주는 게 맞다 싶어 그 남학생의 시를 뽑았다고 이야기해줬지만,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시는 아무나 못 쓴다. 그리고 그 '아무나'에 내가 들어간다. 나는 시인이 될 수 없고 시를 쓸 수 없다고. 바로 단념했다. 내가 그 남학생보다 나이가 많아 수상을 못한 게 아니라, 내 시가 별로였다는 얘기를 돌려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중략>
남은 평생 단 하나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
뭘 선택할래?
언젠가 네가 물었고
난 눈을 감은 채
응
하고 답했지
응
<중략>
-백은선 <뾰>
남은 평생 단 하나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
응
하고 답하는
그런 사람 앞에 잠시잠깐 서게 된다.
너무나 많은 부정과 부인에 둘러싸여 있는 세상에서 단 한 명 이런 사람이 있다면,
삶은 견딜 만한 것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