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몽상가의 다락방

막 문을 닫으려 할 때쯤, 살짝 술 냄새를 풍기며 알딸딸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손님이 가끔 있다. 대부분 남자인데, 시집을 사는 사람이 많다. 근처에 술집이나 바가 많아서 한잔하고 돌아가는 길, 불빛에 이끌려 무심코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다.

-<술김에 시를 사다> 다지리 히사코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 




술에 조금 취한 남자 손님이 불빛에 이끌려 이 작은 서점 문을 밀고 들어와 시집을 사가는 정경을 상상해 본다. 그는 평소엔 서점을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를 쓰거나 읽는 일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먹고 일하고 자고 사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그 사이로 동네 작은 서점을 가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도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그 사이로 동네에서 책을 팔던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이제 어린 아이가 책 살 돈 없이 그저 책을 둘러보고 가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며 작은 의자를 내어 주는 그런 서점 주인이 자생해 나갈 길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은 전투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타령만으로 살아나갈 길은 요원하다. 그래도 이따금은 그래도 이런 글들을 읽고 안식을 얻고 싶다. 여전히 그 틈새에서 고군분투하며 지켜나가는 그 무엇들에 대한 희망과 신뢰와 기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 


"작가님, 작가님의 단편 <뉴욕제과점>을 낭독해주셨으면 합니다."

"한번 해볼게요."

<중략>

그와 함께 만든 세계가 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국 문학은 재미있다'는 세계. 이 세계를 가장 먼저 함께 만들어준 김연수 작가가 항상 고맙고 자랑스럽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김승복>




도쿄의 진보초 거리. 고서점 150여 곳이 모여 있는 책의 거리에 유일한 한국어 책방 <책거리>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에는 놀랍게도 '책거리'를 운영하는 저자와 김연수 작가와의 사연이 나온다. 책방 주인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그 책을 읽히게 하기까지 그 여정에 독자와의 소구 지점을 빚어내는 데 수많은 관계망이 있다. 작가들에 대한 제안들, 그 제안들은 제대로 그 속마음을 전달하고 취지를 공감하며 또 그 상대의 현실과도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거의 처음부터 언제나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시원하게 상대의 제안에 따뜻하고 적극적으로 응해서 그의 기세를 꺾지 않고 결국 그 책방이 흥하게 하는데 일조한 작가가 김연수라니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쓴 작가가 이 한국어 책방의 세계 확장에 기여했다니 감동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모든 행위가 교환가치로 환산되는 이 삭막한 세계에서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동네 서점이 있다는 건 삶이 아무리 분주하고 소모적이어도 최후의 보루가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아무쪼록 오래오래 이 서점들이 버텨주기를, 흥하기를, 그리고 그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들이 그 위안과 안식처를 잃지 않기를...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