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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의 다락방

태어나기 이전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죽음 이후를 모른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은 최악의 내일이 아니라 안개에 휩싸인 듯 모호한 내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극도로 압축한 현장이 아마도 병원에서의 마지막일 것이다.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결국은 맞닥뜨리게 될 실존의 마침표다. 

















의료 현장 속 의료인이 쓴 사람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는 넘칠 만큼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원제인 ㅡ<Modern death> 는 현대 의료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우리가 혜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 만큼 죽음의 현장을 오염시켰는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며 우리가 묻어뒀지만 더는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마지막이 병원 현장에서의 공격적인 진료의 프록토콜을 그대로 따라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그 생의 종결이 마치 끝까지 겨뤄 이겨야 하는 실패로 간주돼도 정녕 괜찮은가? 


내과 의사인 저자는 이런 본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들을 가차없이 밀어 붙인다. 인기 없는 그 명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에 천착하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그 풍경의 묘사는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그 현장으로 나를 소환하는 것 같아 힘들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떤 그 가라앉는 마음을 다시 들어 올릴 힘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온갖 장치를 아이언맨보다 많이 몸에 연결하고서야 비로소 죽음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이더 와라이치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가 과연 솔직하게 가감없이 우리의 "끝"에 대하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꺼이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는가?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전담하게 되는 의료인들과 그것에 대해 제대로 된 정말 원하는 그 결말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생명의 신성함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와 동일시되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하이더 와라이치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연명치료와 안락사에 대한 첨예한 대립과 저자 자신의 생각도 나온다. 우리가 환자를 둘러싸고 내리는 판단이 과연 그 환자 본인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대신하여 목소리를 내고 그를 간병하는 입장에서의 가치관에서 나온 자기 중심적인 것인지에 대한 지적도 예리하다. 더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처지의 환자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게 되는 지점에 대한 그 모호한 부담과 고통에 대해서도 통감한다. 어차피 질 싸움에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그 위치의 논란과 고뇌 또한 만만찮다. 


죽음을 거론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태반이 병원에서 끝까지 온갖 의료 처치를 받으며 고독하게 죽는 시대, 영원할 것처럼 갈급한 욕망을 조종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가 폭주하는 시대, 그 시대의 끝에도 여전히 우리는 결국 죽음을 맞아야 한다. 휘황찬란한 스크롤로 인간 존재의 본원적 불안을 상품으로 가공해 기만하는 일상으로 숨어 들어가도 결국 맞아야 할 그 어쩔 수 없는 끝의 불편한 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야기의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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