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통일운동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 한 몰락하는 귀족 가문의 이야기가 <표범>이라고 한다면, 이는 이 매혹적인 이야기의 일부만 드러낸 것이다. 사십 대 중반의 시칠리아 영주가 아들처럼 사랑했던 신세대 조카의 혁명 참가와 실리적인 판단에 따른 결혼을 지지하며 삶과 죽음에 대하여 탐구하는 이야기이고 이 주인공이 작가 자신의 가문 증조 할아버지를 모델로 한 일생 유일한 장편소설로 생전에는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했다 사후에야 출판되어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국민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뒷얘기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단 한 권 남긴 가문의 이야기는 고전이 됐고, 알랑들롱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다시 넷플릭스 시리즈 제작 중이다. 직업적 소설가도 아니고 전문적인 작가 수업을 받지도 않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은 이야기 자체로 그만큼 매력적인 스토리의 재미와 인간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돋보이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시칠리아 귀족 돈 파브리초 살리나 영주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마음껏 향유하는 한편 천문학에 심취하고 장엄한 미사를 드려 자신의 방종을 회개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호화로운 별장을 순례하고 사냥터를 누비고 거리의 여자를 안는 그가 죽은 누나 대신 돌본 조카가 영주의 딸 대신 혁명의 세례를 받은 신흥 부자인 시장의 딸과 결혼하게 되자 화통하게 그 결혼을 응원해 주는 배포를 보여주기도 한다. 구체제에서 누린 계급적 특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급변하는 정세의 변화에도 흔쾌히 열린 마음으로 그 변화를 맞이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돈 파브리초는 정작 중요한 것이 그런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가 정작 천착하는 주제는 인간에게 닥치는 필연적 죽음이었고 <표범>의 비상한 흡인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살리나 가문의 문장인 표범은 지배계급의 그 간악한 공격성과 지배 욕구, 탐욕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을 결국 기습적으로 먹어버리는 죽음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그는 화려한 무도회에서 춤추는 사람들에게서도 결국 닥칠 죽음을 보게 되고, 인간 전체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그 누구보다 삶 자체를 만끽하며 누리는 그가 역설적으로 죽음의 안식을 동경하고 거기에 기꺼이 승복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이 남자의 일대기의 압축이 향하는 그 종착점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성찰이 뒷받침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려한 이야기 이면에는 이토록 어둡고 깊은 생의 유한함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
우리는 영원을 제외하고는 무엇도 증오할 수 없다.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세상에 영원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