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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귀차니스트의 책읽기

  요즘 핫한 고창 황윤석도서관을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유현준씨가 종묘를 모티브로 해서 설계했다는 도서관인데 작년에 만들어지고 난 이후 여러 곳에서 칭찬이 자자한 그 도서관요. 결론부터 말하면 진짜 멋진 도서관입니다. 고창에 내가 산다면 매일 가고싶은 곳이에요.


  일단 외관부터 멋집니다. 횡으로 길쭉한 도서관을 보면 종묘를 모티브로 했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네요.







  내부로 들어가면 다음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점은 따로 열람실을 두지 않는다는겁니다. 빛을 있는대로 끌어들인 높고 널찍한 공간에, 서가를 가운데는 낮게 벽 쪽은 높게 배치하고 남은 공간은 여러가지 종류의 의자들을 배치해서 자기가 읽고싶은 자리에서 원하는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네요. 한 쪽 벽면은 2층 구조로 만들었는데 층을 통층으로 배치했습니다. 내부 공간인데 안과 바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탁 트입니다. 사진 속의 창가에는 바깥 풍경을 향해 있는 작은 책상과 의자들이 있고요. 안쪽으로 들어가면 둥근 소파형태의 의자나 사각의 긴 소파 의자, 그리고 계단식 열람 공간 등 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어서 하루 종일 자리 옮겨가며 앉아 있고 싶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니 2층도 넓은 공간입니다. 역시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공간배치가 멋졌습니다. 책장이 높은데 손이 닿는 곳은 읽을 책들이고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은 이미테이션 책들인 것 같았습니다. 이미테이션 책들도 최근에 나온 책들의 다양한 표지를 표여줘서 좋았네요.







  마음에 들었던 자리. 하지만 곧 사라져서 여기는 못앉고 잠시 소파에 앉아 있으니 창가 자리가 났어요. 옆에 있던 큰 딸과 둘이서 자리 옮겨서 책을 읽었습니다. 원래 책 좋아하는 둘째는 제가 화장실 갔다온 사이 일치감치 사라져서 어딘가에 찡박혔고, 남편도 어디갔는지 모르겠고, 2층에서 큰 딸만 만나서 둘이서 사이좋게 앉아 책을 읽었네요.







  저는 서가 구경하다가 빼온 이슬아 작가님의 <갈등하는 눈동자>, 큰 딸은 며칠전 타계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녹나무의 파수꾼>. 공간도 좋고 읽기 시작한 이슬아 작가님 책이 생각보다 더 좋아서 한 30분쯤  신나게 책읽고 있는데 남편이가 왔습니다. 


남편 : 피곤하고 잠 온다. 이제 집에 가자

나랑 딸 : 왜 좋은데, 좀 더 있자

남편 : 책 읽고 있는데 잠이 와서 못 보겠다.

나 : 무슨 책 읽었는데?

남편 : 법화경

나랑 딸 : 아니 그걸 왜 읽냐고???? 


도대체 이런 곳에서 법화경을 갑자기 왜 읽는지? 그러니 잠이 오지. 결국 운전해야 하는 남편을 배려해서 겨우 40분 정도만에 나오고 말았어요. 어찌나 아쉽던지?

나오면서 딸한테 궁금한게 있어서 물었어요.


나 : 근데 딸아. 너는 왜 그 책을 중간부터 읽니? (참고로 큰 딸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세상에 책보다 재미난게 너무 많다네요. ㅎㅎ 뭐 그말도 맞긴 하죠.)

큰딸 : 아 이 책은 내가 작년에 호주 놀러갔잖아. 그 때 캔버라에서 오후에 할게 없어서 심심하더라고. 그래서 캔버라 도서관에 구경갔는데 이 책이 있는거야. 그래서 그 때 읽던 거 이어서 읽은거야.


그러니까 얘는 작년에 호주 캔버라에서 일본 소설을 한글로 번역된 걸 찾아서 읽고, 오늘 한 10개월만에 이어서 읽는다는....매우 글로벌하면서, 매우 하찮은 책읽기가 아닌가요?  어쩌면 너는 이 책을 다 읽으려면 다음 우연을 기다려야겠구나..... 


  도서관을 나오면서 들어갈 때는 눈에 안 띄었던 입구 벽면이 보입니다. 이곳이 황윤석도서관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 지역의 18세기 실학자였던 이재 황윤석 선생을 알리고, 기리는 의미라고 하는군요. 저도 황윤석이란 이름을 이 도서관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재난고>라는 백과사전적인 저술을 남긴 학자 다운 말이 딱 새겨져 있습니다. 한 가지도 똑바로 못하는 저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할 듯합니다. ^^;;





  도서관을 나오면서 이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는 도서관을 낮은 크기로 아름답게 지을 수 있었던 건 이곳이 고창같은 작은 도시였기에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는 일단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울 테니 외곽에 접근성 떨어지게 지어야 할테고, 기본적으로 인구가 많으니 아마 이런 적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이기는 힘들어, 매일 바글바글 자리 전쟁이 일어날테니까요. 지방 도시 모두에 이런 멋진 도서관이 다들 하나 쯤 있어 지역의 문화 중심의 역할을 하면 진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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