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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귀차니스트의 책읽기
  • 절창
  • 구병모
  • 16,200원 (10%900)
  • 2025-09-17
  • : 113,749

  글을 쓸 때 힘을 주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힘을 빼는 일이다.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을 준 글을 읽을 때 독자는 빨리 지친다. 글이 주는 지나친 무거움, 과잉된 비장함 이런 것이 신경의 피로를 빨리 가져오고, 굳이 이렇게 비장하게 얘기해야 될까라는 질문이 자꾸 떠오르다보면 문맥을 놓치고 산만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끝까지 그러했다면 아마도 다 읽어내지는 못했으리라.... 이 소설에는 선생님과 아가씨, 2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소설의 초반은 선생님의 진술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좀 훌륭한 문장 쓰기 연습 공책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힘을 준 문장들의 연속이어서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인내를 갖고 읽어보자. 2부에서는 아가씨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문장들에 지나치게 들어간 힘이 좀 빠지기 시작하는데 난 오히려 여기부터가 좋았다.


  첫 번째 화자인 선생님이 하는 다음 말에서 이 소설의 주제는 이미 제시된다. 이 즈음에서는 독자인 나는 투란도트나 인어공주 이야기의 예를 읽으면서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것인가하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어쨌든 이 일의 처음은 '읽는'데에서 비롯했기에, 나는 그 행위의 목적어가 어떤 사태와 사람에 닿아 있다 할지라도,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 15쪽


  그러나 조금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말하는 읽는 행위와 그 행위에 필연적으로 잠재한 오독은 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우리도 흔히 마음을 읽는다고 하지 않나? 이 책은 결국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 그 마음을 알아주는 일,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없는 이들과 그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중 하나인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에 접촉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 찔리고 베이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만지면 그의 기억이 파도처럼 나의 온몸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읽어내는 기억, 마음은 거짓 없는, 오독의 가능성이 없는 진짜 마음일까? 기타 선생님의 상처를 통해 기억을 읽어야 할 때 아가씨는 미친 듯이 외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그게 안되면 그냥 상관없는 다른 걸 생각해, 애인 얼굴이라도 떠 올리라고.... 정말로 아가씨는 기타 선생님의 기억을 읽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능력조차도 상대가 마음을 감추려고 한다면, 우리가 읽는 것은 결국 오독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은 읽기의 불가능성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면 사람의 마음, 그것도 내 옆에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가씨는 오언에게 " 절대로 네 마음은 읽지 않아"라고 하지만 이미 아가씨는 오언의 마음을 읽고 있다. 그렇게 상처를 헤집지 않아도 그의 표정, 말투, 몸짓만으로도 아가씨는 오언의 마음과 진심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우리는 다 알고 느낄 수 있다. 흔히 사기꾼의 말에 넘어간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나를 속였는지 모른다"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 사기꾼이 감쪽같은게 아니라, 그의 사기를 통해 얻을 댓가에 눈이 먼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마음만 읽은  결과가 사기를 당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진심이면 상대의 진심도 보인다. 아가씨의 너만은 읽지 않겠어는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이지. 너의 마음을 몰라가 아닌 것이다. 


  바로 여기, 안다고 해서 모든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데 삶의 괴로움이 있다. 너를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내 삶에 설정한 선을 무너뜨려야 할 때, 너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럴 때 인간은 과연 타인의 마음이 아무리 절절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삶과 마음을 무너뜨려야 함께 할 수 있는 삶은 과연 끝까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읽기의 어려움과 불가능성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읽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내가 너의 마음을 받아들일지의 여부의 문제라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이 소설이 재밌는 것은 그 평범한 결론에 다다르는 여정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리란 결국 가장 쉬운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아가씨가 돌보게 된 어린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너무 평범하고 가볍다.


  그녀는 때린 아이의 어깨를 가만히 붙들고 말한다. 친구를 다치게 하면 안돼. 너 얘랑 친하잖아. 얘도 너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때리고 할퀴고, 상처를 주면 안 돼. 사과할 거지?    -344쪽


  그러니까 이토록 작은 진리에 이르는 것이, 그리고 상처주지 않는 온전한 마음의 교환이 사실은 너무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는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실은 쉬운 것이라는 것을 또한 보여준다. 다만 그 쉬운 것에 도달하기 위해 무수한 오독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게 사람의 마음인 것인가? 내 마음을 아는 것도 어렵지만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초반의 그 힘이 잔뜩 들어간 문장들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사람의 진심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작가는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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