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이 있는 풍경













첫 문장에서 공동 저자 두 사람은 이 책이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정의되고 작용했는가를 고찰해 보는 작업"(15쪽)이라고 썼다. 19세기에 나타났던 남성성은 고정된 상태로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구도에서 여성성과의 대타성을 통해 '형성'되었고, 이것이 성, 인종, 계급을 둘러싼 담론을 통해 정교화되었다는 주장이다.

초기에 인도와 유화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영국은 1857-1859년 사이에 발생한 인도 항쟁Indian Rebellion(세포이 반란Sepoy Mutiny)을 겪으면서 식민지 정책에 일대 변화를 만들었고, 본국이 직접 식민 경영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병력을 인도에 파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영국과 인도의 관계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애시스 낸디를 소개하면서 저자들은 '영국의 초기 인도 식민 통치 시기를 다소 이상주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전에 아시스 난디를 읽고 정리한 글이 있어 여기(친밀한 적-상호 속박-된장찌개,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974222)에 붙여둔다.

식민 지배자의 지배자 모방과 관련해서는 호미 바바의 의견이 주효해 보인다. '양자의 식민 관계가 단순히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의 구도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흉내내기가 잠재적으로 식민 권력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식민 권력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63쪽)는 주장이 바로 그것인데, 자연스레 푸코의 권력에 대한 문장을 기억할 수밖에 없겠다. 나는 이 문장을 위해 『감시와 처벌』을 읽었던가 싶다. 3-4번을 인용했지만 다시 한번 인용해 본다.











즉,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 주기도 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권력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다만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권력은 그들을 거점으로 삼는데, 이것은 마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거점으로 삼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이 권력의 이러한 관계들은 사회의 심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지, 국가와 시민들 사이에 혹은 국가와 계급들의 경계 사이에 있는 관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감시와 처벌』, 66쪽)


푸코의 말을 영국과 인도의 관계로 풀어보자면. 인도는 식민 지배자인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고, 그의 지배하에 있다. 하지만, 지배자와 피지배자인 두 국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 것은 피지배자인 인도만은 아니다. 영국 역시, 명령하고 다스리고 억압의 주체인 식민 지배자 영국 역시 인도의 영향을 받으며, 그 행사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간다'.


<제2장 타자의 몸: 인종, 성, 계급의 교차점>에서는 이런 문장에 주목하게 된다.

<타자>에게 부여된 속성들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안티테제로 설정된 것이고, 이것 역시 유럽의 오랜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103쪽)

중요한 건 '타자'다. 유럽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안티테제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신대륙의 타자들에게 독특한 속성을 부여했다. 이때 유럽은 훨씬 선명한 <바깥 세계의 타자>와 익히 알고 있는 <유럽 내의 타자>의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전통적 타자>는 오랜 기간 유럽에서 함께 생활했던 유대인이며, 또 하나의 타자의 전형이 여성(106쪽)이다.

상대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규정하는 타자화에 대해서는 『제2의 성』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타자의 범주는 의식만큼 근원적인 것이다. 가장 원시적인 사회와 가장 오래된 신화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동일자와 타자의 이원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분할은 애초에 성적 구분이란 특징을 띠지 않았고, 어떤 경험적 사실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는 특히 중국 사상에 관한 그라네Marcel Granet(1884~1940)의 연구와 인도·로마에 관한 뒤메질Georges Dumézil(1898~1986)"의 연구에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바루나와 미트라, 우라노스와 제우스, 해와 달, 낮과 밤 같은 한쌍에는 애초에 어떤 여성적 요소도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선과 악행과 불행의 원리, 좌와 우, 신과 악마의 대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타성은 인간의 생각에 근본적인 범주다. 어떤 집단도 자신 앞에 타자를 즉시 상정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주체로 규정짓지 못한다. (『제 2의 성』, 29쪽)

이는 개인으로서도 집단으로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는 경우, 나 아닌 외부, 나 아닌 모든 것으로서의 '외부'를 '타자'로 규정하듯이, 집단도 자랑스레 명명하는 '우리' 앞에 타자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자기 집단을 주체로 규정할 수 없다. 유럽에서 여성, 유색 인종, 유대인은 타자로서 전제된다. 타자의 설정, 타자의 고정화를 통해 백인 남성인 유럽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정교화되었다. 그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과학의 획기적 발전을 통해 오히려 타자화는 더욱 고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핵심은 타자화다. 긍정적인 모든 요소가 '나'의 것이 되고, 부정적인 모든 요소는 '타자'의 것이 된다. 아름다운 것은 '나'의 것이 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타자'의 것이 된다. 나는 상식적인 사람이고, 너는 경우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고, 너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비범한 사람이고, 너는 이상한 사람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보통의 '우리'가 '우리' 아닌 모든 것, 타자를 대하는/대해 왔던 방식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