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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님의 서재
  • 자유를 위한 변명
  • 홍신자
  • 12,420원 (10%690)
  • 2016-04-28
  • : 295

그러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시절에 ‘홍신자’란 이름이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해골을 들고 무용을 한다고 이슈였지 아마. 난 그때 뭐 그런 사람이 있나 좀 오싹했었다. 그래도 워낙 유명해 이 사람의 유명세는 제법 오래 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그녀도 세월 속에 잊힌 사람이 되었다. 한때는 한국의 이사도라 던컨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가끔 문득 궁금하긴 했다. 과연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렇게 궁금하던 차에 마침 그녀의 자전에세이가 복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가 그렇게 유명하던 시절 에세이를 낸 것도 난 사실 알지 못했다. 그걸 이번에 복간 되서야 알다니. 하긴 그땐 내가 너무 어리지 않았는가. 아무튼 이 책을 손에 넣고 반가웠다. 마침 그녀에 대해 궁금하던 차에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읽고 있으려니 역시 오래 전에 읽은 이사도라 던컨의 전기가 생각이 났다. 그 책도 보면 굉장히 정열적이고, 자유로운 던컨의 면면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그것과 오버랩이 되면서 무용가들의 영혼은 다 이럴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전공은 영문학이라고 한다. 미국 유학을 갈 때도 무용을 공부하겠다고 떠난 것도 아니었단다. 오히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무용을 접하고 그것에 매료되어 전향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스물일곱.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난 이런 식의 반전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인생 역전’, ‘대박 인생’ 뭐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만이 대박 인생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만 보는 건 인생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가? 그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해 내는 그녀의 집념이 부럽다. 무용을 하려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는 데 스물일곱이면 이미 몸은 굳어질 대로 굳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기꺼이 몸을 만들었다. 그러기까지 그녀의 몸은 또 얼마나 찢기고 허물어져야 했는지. 주위에서도 포기하라고 하는데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자신의 길을 발견했으니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성공한 무용가가 됐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건 그녀가 무용가로서 성공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녀는 성공에 도취도지 않고 돌연 어느 순간 무용을 놓아버린다. 어떻게 시작한 무용이고, 어떻게 얻는 성공인데 그것을 과감히 놓아버리는 걸까? 그녀는 말한다.

“(...)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춤이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인생의 한 시기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마침 춤이 그 해답이 되어 준 것뿐이다. 이제 춤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을 찾아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서자 나는 자유롭게 그것을 버릴 수 있었다(61p)” 그래서 그녀를 구도의 무용가라고 했는가 보다.

 

그러기 전에 그녀는 죽음의 문제와 자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매번 죽었다고 생각한 자아가 순간순간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구도를 위해 인도를 갔고, 인도 최고의 구루(영적 지도자)의 제자가 되어 여러 가지 수행을 한다. 거기엔 해골에 물을 담아 먹는 기행(?)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해골을 들고 무용을 하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죽음과 자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가르쳤던 구루가 하산을 명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춤을 계속 추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게 참 나에게 강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몰아붙였던 갈까? 물론 그녀의 구도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고, 권할만한 방법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대부분은 어렵게 자신의 인생의 길을 발견했다고 해도 또 다시 자아에 매이는 자신을 본다. 인생의 길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지만 그 길에서 최고가 되려고 다시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지는 않는가? 뭔가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치는가? 그걸 또 인생을 위한 거라고 합리화시키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명예와 권력을 쥐게 되지만 그것에 매이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 많은 책들과 매스컴이 그러라고 부추긴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무용이 아니었다. 자유였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무용의 길을 발견하고 몸부림쳤던 건 예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난 그런 그녀가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에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너머의 세계를 추구했고, 지금도 추구해 갈 것이다.

 

그녀는 늘 초월적 자아의 실현에 목이 말랐다.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뭔가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을 곧추세우고 나만의 삶을 잘겠다는 자유. 그 무엇에도 메이지 않을 자유.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유.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예술을 추구한다면서 여전히 속박당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예술은 예술 자체에서 추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서 표현되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이 유명한 사람이 너무 안 알려져서 언제 고인이 되었나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녀는 너무도 잘 살고 있었다. 이렇게 책을 복간하리만큼 당당하게. 

 

책이 참 대담하다 싶다. 하지만 몸소 부딪혀 깨어지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대범함이 멋지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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