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읽어보는 스티븐 핑커의 책이다.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는 20년쯤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그의 책들은 특유의 벽돌감 때문에 감히 읽어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이 책 역시 선뜻 읽을 자신은 없었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 용기를 냈다. 사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여러 많은 사람들이 쓰긴 한다. 그건 주로 자기 계발 내지는 작가들 그중에서도 소설가들이 많이 써 왔다. 이 책도 얼핏 부제를 보면 어느 영문학 내지는 영미권의 언어학자가 쓴 책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심리학자가 썼다. 또 그래서 그런지 접근이 기존의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또 어느 분야의 전문가들이 글을 쓰겠다고 나올지 궁금하다.)
저자는 단순히 글쓰기에 관한 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감각에 관해 다루고 있다. 특별히 저자는 글을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과의 차이를 지적한다. 나도 평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인데 그것을 단순히 오독도 독서의 한 형태라며 방관해도 좋을까에 대해 이 책은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유독 예문을 많이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쓸 수도 있는 글을 '감각'을 살려 이렇게 쓰면 더 좋지 않냐고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입장이라면 반박을 할 수가 없다(무엇보다 저자가 누구인가?). 그러면서 난 지금까지 글쓰기를 어떻게 쓰고 생각해 왔나 너무 쉽게 생각해 온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글쓰기 강사들은 하나같이 쉽게 쓰라고 강조하다 못해 거의 강요하다시피 한다. 물론 그들의 그런 강조는 틀린 것은 아니다. 글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차라리 어렵게 쓰는 게 낫지 쉽게 쓰기는 오리려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어떤 글은 새털같이 너무 가볍다. 즉 글쓴이의 개성이나 강조점이 드러나지 않는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가르쳐 온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과연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저자는 특별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은연중 자신이 쓰는 글을 독자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좀 더 자기가 쓰는 글에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쉬운 것과 친절한 건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읽고 있으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내 글에 책임을 지며 글을 써 왔을까 반성하게 된다. 나도 이런 리뷰를 비롯해 이런저런 글을 자의든 타의든 쓰게 되는데 적어도 독자를 외롭게 하는 작가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번역가들에게 많이 추천이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물론 언어는 다양하지만 아직도 영어를 쓰는 작가들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번역되는 것도 있지만, 특별히 번역가들에겐 남다른 언어 감각이 요구되기도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끔 어떤 책에 대해 리뷰를 써 놓은 걸 보면 거의 질타에 가까울 정도로 번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글을 읽기도 한다. 사실 너무 오래된 번역본인 경우 예전엔 이렇게 번역을 했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언어 감각이 너무 떨어지는 책을 보면 읽기가 싫어지는 건 사실이다. 물론 번역가는 번역가대로 고민이 있겠지만,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같은 동종업계의 사람끼리는 몰라도 독자에게 이해받기를 바라선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다소 호불호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의 기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좀 버거운 책이었다. (역시 스티븐 핑거는 나에겐 쉬운 사람은 아니다.) 책이 이렇게 어려운데 기분이 꿀꿀한 건지 글쓰기에 대해 만만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좀 부끄럽게도 느껴진다. 하다못해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말도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면서 하물며 영어를...?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말하기와 글쓰기는 평생 가는 것. 우리는 학교만 졸업하면 '읽기와 쓰기'도 졸업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그때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가 아닐까. 그것을 포기한다는 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SNS의 발달로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홍수 중 마실 물이 없다고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통해서도 도전받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