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다. 장르는 범죄 수사물쯤? 이런 쪽의 장르라면 나는 당연히 영화로 봤을 텐데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대중 소설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차치하고라도 지금은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에 대한 관심이 비등해졌거나 오히려 대중소설이 조금 더 앞서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지난 세월 동안 드라마 제작사나 영화사에서 지속적으로 판권을 사들이고 작업해 온 결과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이 방면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공부한 결과이기도 하고.
이제 소설 쓰는 작가들은 단순히 내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바라지 않는다. 아예 쓰는 단계에서부터 영화처럼 쓴다. 그것을 난 이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과연 이렇게 쓰는 작가들은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또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영화 제작 편수가 1년이면 몇편이나 되겠는가? 영화처럼 소설을 쓴다고 해서 다 영화화되는 것도 아닐테니 오히려 소설로 둥지를 틀기도 하겠지. 그러고보면 장르 소설은 더욱 팽창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소설 쓰는 것보다 몇 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까 옛날 같으면 (시나리오 작가가 많지도 않았지만) 시나리오 쓰는 게 어려워서 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지금은 그 말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창작의 세계에선 더 이상 쉬운 길은 없다.
침대만 과학은 아니다. 시나리오도 과학이다. 이것은 단순히 1+1= 2라는 말이 아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맥거핀(영화의 내용과 상관없는 장면을 슬쩍 끼워 넣는 것)이란 것도 있긴 하지만 이유 없는 결과가 없듯 이유 없는 장면은 없다. 초반에 밑밥을 잘 깔고 그것을 후에 회수하는 것도 시나리오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또 그러기 위해선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어야 좋은 작품이 되는데 그 어려운 것을 이제 소설도 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위의 것들을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지면상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고, 대충 풀어보면 여기서의 메인 플롯은 어린 찬서가 미장원 일을 하던 엄마가 교제하던 전탁근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후, 찬서는 엄마와 함께 살던 무산으로 돌아와 복수를 꿈꾼다(이건 복수극의 전형적인 시나리오 방법이다). 전탁근이 25년형을 받고 만기 출소해 무산으로 돌아온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이게 메인 플롯의 과제다.
그런데 25년 만에 돌아온 무산은 환경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이 변했다. 엄마가 일하던 로라 미용실엔 웬 알지도 못하는 수상한 늙은 여자가 원장이란다. 또한 이젠 동네와 함께 늙어간 여사님들이 이곳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데 바로 그들이 마을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탁근의 둘째 아들이 일찌감치 내려와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데 똑똑한 놈이라는 건 알겠는데(외과의사 면허증이 있으니),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알 수가 없다.
이상한 건 찬서는 그저 전탁근에게 복수하려는 것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미장원 원장과 엮이는 느낌이다. 그러다 마침내는 원장으로부터 탐정이 되라는 권유를 받는다. 물론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느새 미장원 바로 위층에 탐정 사무소를 차리고 사람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몇 개의 일을 해결하는 공도 세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몇 개의 일이 다 교제 살인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서브 플롯이 되시겠다. 즉 이 이야기 가는 길은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어떤 정체의 사람인가, 교제 살인의 가해자들을 찬서가 어떻게 응징하는가 또한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전탁근을 어떻게 복수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정말 읽고 있으면 영화에서 느끼는 통쾌함과 희열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살짝 갈등도 느낀다. 영화로 볼 걸 굳이 책으로 읽나 하는. 하지만 등장인물은 어떤 배우가 캐스팅이 되면 좋을까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 게다가 아직 영상화될 건지 아닌지는 미지수다 )
그런데 이 소설이 좀 특별했던 건, 이 책에선 약간의 윤색을 했는데, 꼭 60년 전인 1964년, 21세의 젊은 남자가 길에서 마주친 18살 여성에게 키스를 했다 혀가 잘린 사건이 있었다. 그로 인해 한순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게 되었고, 여자는 성추행범이 되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반면 남자는 먼저 가해를 했음에도 인정되지 않고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더 황당한 건 당시 판사가 여자에게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결혼하라고까지 판결을 내렸다. 난 그때 뭐 그런 황당한 판결이 있는지 좀 놀라웠다. 우리나라 법이 단순히 무른 줄만 알았는데 미개하기까지 하구나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일개 판사가 나서서 결혼해라 마라 훈수까지 두다니. 궁금했다. 그 판사도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판결에 복종할 수 있는지.
생각난 김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동안 몇 번의 항고와 최근 2022년 재심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고 기각이 되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동안 여권의 신장과 여성 법조인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니. (이 비슷한 사건은 그 후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자 쪽의 무혐의가 인정됐다는 것. 내가 놀라는 건 이런 사건이 그때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간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어쩔 것인가.)
아무튼 작가는 바로 그 사건을 상기시키며 '과거에서 온 엄마의 비밀노트'란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재탄생시켰다. 실제로 그 사건의 여자가 판사의 판결에 굴복해 자신을 추행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결코 행복할 리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작가가 그 여성을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그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책에 나온 몇 개의 에피소드 역시 작가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혀 썼을 거라 짐작해 본다. 또한 작가가 다룬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도 아닌 빙산에서 녹아내린 물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 시간에도 데이트 폭력과 교제 살인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인도나 중동 지역의 여성들은 남편이나 남자 형제로부터 끔찍한 살인이나 폭력을 당하고도 마땅히 말을 곳 조차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라고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10대 청소년이 같은 동급생 여자아이를 흉기로 찔렀다는 보도를 접했다. 모르긴 해도 교제하는 사이거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냥 남사친 여사친 하는 사이에선 그런 일은 생길 수 없다.) 이거 무서워 어디 데이트고 나발이고 맘대로 할 수나 있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이런 소설 한 권 읽었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물론 기발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니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이 책의 부제가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다. 얼마나 강렬한 문장인가.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설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남성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나라는 피바다가 될 것이며, 서로에 대한 혐오와 갈등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소설은 나름의 기능과 쓸모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재미가 첫 번째지만) 이를테면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도 온갖 협박과 가스라이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각성과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바람직한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이 먼저 아닐까? 이야기는 통쾌하고 재밌기는 한데 이런 것만 보면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데이트를 해야 결혼도 할 것이고 나아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도 가져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내가 이런 소설을 기피했던 건 순수 문학만 선호하는 것도 없지 않지만 좀 어둡고 잔인해서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솜씨가 그럴듯하다. 막 잔인하다가도 끝에 가선 해피엔딩이다. 옛말에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지 않은가. 역시 화제성 소설답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