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는 역사가와 미묘하고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한 역사인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 대한 탈근대적 물음은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의 역사의식과 밀접한 관계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널리 읽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소설처럼 이야기가 있는 책으로써 일어난 일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저자의 주관적 탐구가 많이 개입된 역사서가 있는가 하면 몸젠의 로마사 같이 사료에 충실한 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볼때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사실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는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가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 역사가 과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복수의 형태로 존재해왔고 누가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취사선택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객관성을 담보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사실 '있는 그대로 기록만 하면 된다'고 한 랑케의 말을 역으로 살펴보면 과거는 없고 남아 있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라고 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기록이라는 객관적 사실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부여해 태어난 것이 역사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역사의 과학성과 그 역사가 이야기 되어지는 서사와 문학성의 두 가지 요소를 갖출 때만이 완성된다고 보면 넌센스일까?
역사의 가치는 과거에 국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가치와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몸젠의 로마사가 갖는 의미는 분명 내용의 진위여부를 떠나 몸젠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두고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가에 따라 역사는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역사는 과학이 아니라 담론이라고 한 니체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헤게모니를 만들어내고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로마사 연구는 몸젠의 로마사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저서다. 역사서에서 한 획을 그은 연구서라고 할만한 방대한 자료와 객관적 사료 연구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은 로마사를 폭넓고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력있는 책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아니 로마의 어제와 오늘은 몸젠의 로마사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