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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에서 쓴 수기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9,000원 (10%500)
  • 2012-10-09
  • : 881

<지하에서쓴 수기>는 도스토예프스키 후기 걸작 장편들이 담고 있는 사상의 모태가 되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1863년 체르니셰프스키가 쓴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가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과학적, 합리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작가가 자신의 정치적인 사상을 담은 소설이다. 근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낙관적인 유토피아 소설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그에 대한 반박으로 1864년 <지하에서 쓴 수기>를 잡지에 연재하고 1865년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지하에서 쓴 수기>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인공 '나'의 생각, 특히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던 합리적, 과학적 사상을 비판하며 자신이 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지 독백 형식의 글로 보여주고 2부는 젊은 시절 자신이 경험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일인칭 소설 형식으로 보여준다. 


1부, 첫 시작부터 흥미롭다.


['나는 병자다......나는 못된 인간이다. 나는 매력이라곤 없는 사람이다. 나는 간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병 따위에 추호도 관심이 없으니, 나에게 병이 있다는 것도 분명히 모를 수 있다.'(p.9)]


'나'는 마흔 살로 '관청에서 근무하는 8급 공무원'이었는데, 1년 전 먼 친척이 6000루블의 유산을 남겨준 덕에 지금은 도시 변두리 '방구석에 쳐박혀 하루하루 연명하며'(p.12) 지내고 있다. 볼품 없는 외모에 소심하고 자존심은 매우 강하나 열등감은 심하고, 극심한 피해 망상과 자의식 과잉 등 한 마디로 사회 생활이 힘든 성격 장애를 가진 비호감 인물이다. 


'나'는 당시 사회에 만연하던 인간의 이성을 기반으로 한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조롱하고 비난한다.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을 계몽해 그에게 제대로 된 진짜 이익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면 그는 곧바로 너저분한 짓을 중단하고, 착하고 고상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모두가 '허황된 꿈'이며 '유치한 발상'(p.38)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는 '인간의 이익이란 완벽하게 계산된 것일까'(p.39) 반문하며 인간의 이익을 계산할 때 '행복, 재산, 자유, 평안' 같은 것들이 고려되는데, 현자들은 한가지 중요한 이익을 간과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만의 욕구, 제멋대로 보일 수 있는 심한 변덕, 때로는 광기에 근접하는 듯한 환상'(p.46)같은 '유익한 이익'으로 인간은 바로 이런 것들을 위해 '이성, 명예, 평안, 행복까지 포기할'(p.41)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반드시 합리적인 것을 따른다는 근거는 없으며 '거의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익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법',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욕구'(p.46)라고 말한다. 


2x2는 반드시 4가 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의지가 끼어들 틈바구니는 없다. 그러나 2x2=4라는 수학적 확실성만을 추구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는 죽은 세계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완벽한 건축물을 짓는 개미와는 다르며, 목적 자체보다는 그 과정을 사랑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수학공식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변덕과 욕망을 가진, 자신의 고통마저도 사랑하는 존재이며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2x2=4보다 무한대로 우월한 인간의 의식이 있다. 


<지하에서 쓴 수기>의 '지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주인공 '나'가 실제로 지하에 사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 여기서 의미하는 지하는 인간 의식의 반대 편에 있는 '우리 스스로 감추고 있거나 외부로 나타내지 않는 우리의 참의식, 즉 진짜 속마음'이다. (작품해설 p.220) 또한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외부와 단절된 자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2x2=4와 같은 불변의 진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념의 상태'(p.60)에 빠질 뿐이다. 비록 인간의 의식이 삶에 어떤 이익도 가져다 주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적어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2x2=5가 될 수 있는 삶이며, '무념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삶인 것이다. 


인생은 인간의 욕망과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지하에서 쓴 수기>의 '나'는 시종일관 비이성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독자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2부에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나'가 24살에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왜 이 사람이 결국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는지는 알 수 있다.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술집에 들렸다가 어느 장교에게 모욕을 당하고 복수를 다짐하나 결국 어깨를 맞부딪히는 것 외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여기서 '나'는 복수를 완벽하게 했다며 혼자 기뻐한다. 또한 초대받지 않은 동창 송별연에 굳이 참석하여 온갖 모멸을 당하고, 급기야 돈까지 빌려 유곽까지 따라가는데 거기서 리자라는 매춘부를 만난다. '나'는 어린 나이에 매춘을 하는 리자에게 '너는 쇠사슬에 묶인 몸'이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며 노예와 같은 지금의 삶으로부터 나오라고 온갖 훈계를 늘어 놓고, 자기 집에 놀러 오라며 주소를 적어 준다. 근데 집으로 돌아와서는 혹시나 리자가 정말 집으로 찾아 와 자신의 이 누추한 꼴을 보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다가 평소 마음에 안 들던('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음에 안 든다) 하인과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추잡한 순간에 리자가 '나'의 집을 방문한다. '나'는 누더기 실내복 차림으로 하인과 싸우던 바로 그 순간에 리자가 찾아 온 것에 엄청난 수치를 느끼고 히스테리성 발작까지 일으켜 연기까지 해가며 온갖 변명과 신세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리자는 그런 '나'의 불행을 이해해주고 '나'는 역할이 뒤바뀐 '기이한 상황'에 놀라 그녀를 '지배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p.204)를 느낀다. 결국엔 그녀에게 증오와 열정의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을 느끼고 그녀와 관계를 갖는데, 이 부분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심리묘사가 정말로 대단하고 느꼈다. 


'나'는 시종일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러면 안되는 줄 본인도 알지만 결국엔 행동으로 옮긴다.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서도 자신의 열등감과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이상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힘을 행사하기 위해 연기까지 하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나'의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행동은 어떤 이익은 커녕 결국엔 고립된 삶을 살게 한다. 자신의 이 모든 이야기가 유쾌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살아 있는 삶에서 이탈해 있기에'(p.211) 진짜 살아 있는 삶에 혐오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한다. 


<지하에서 쓴 수기>의 주인공의 모든 행동은 실패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극단적인 '나'의 행동과 의식에서 우리의 진짜 모습도 언뜻언뜻 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사실, 다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비겁함을 분별력이라 하며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위해왔던 것'(p.212)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식이 없는 인간은 진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진짜 삶의 시작은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의식하고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그리고 고통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의식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의식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불행'(p.60)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이 우리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p.212)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 1부를 읽을 때는 너무나 이상한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말을 늘어놓아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2부의 '나'의 젊은 시절 경험을 담은 이야기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엄청난 자의식으로 똘똘뭉친 '나'의 심리 묘사는 정말 대단했고, 왜 니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심리학자로 인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두고 '도스토에프스키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소설'이라고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하세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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