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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空


과거 몇 권의 불교 경전을 사경한 적이 있다. (물론 옆에 해설서를 함께 놓고 그 뜻은 새기며 진행했다). 낳아주신 어머니를 위해 지장보살 본원경과 금강경을, 아버지를 위해 지장보살 본원경을,  서울로 유학 온 촌 놈이 입대하기 전까지, 2년 내내 기꺼이 보살펴주신 참으로 고마운 분을 위하여 금강경을,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仲秋의 庚金에게 금강경을 각각 사경했던 것이다.

어머니 그리고 나를 자식처럼 돌봐주신 분께는 그 분들이 돌아가신 후 그 품 안에 전해드릴 것이고, 仲秋의 庚金에게는 아직 전달하지 못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고, 그의 아들은 누워 계신 아버지의 가슴에 정성드려 사경한 지장보살 본원경을 안겨드렸다.


최는 나는 지장보살 본원경을 다시 사경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경을 한 후 지장경을 꼭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 복이 너무나도 없었다. 친교를 다양하게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가르침도 큰 작용을 했다.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진정한 친구 한 둘만 못하느니라...


몇 안되는 절친 중 한 사람은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등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할 일들을 상상하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때 내가 참으로 박복한 놈이로구나 생각했다. 또 한 친구는 젊은 나이에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참담했다. 그의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싱그러웠다.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리운 그 친구들에게 직접 쓴 불경을 미처 전하지 못했다. 나이를 봐도 그럴 상대방이 아니었을 뿐더러 모두 내가 사경을 알기 전에 불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 마저 잃는 다면 나의 세상에 친구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건강하며, 흥미롭게도 불경을 수년에 걸쳐 사경을 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 친구 덕분에 나도 사경을 했던 것이다. 내게 이 친구는 죽어 환생을 해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남은 그 친구에게 나의 사경을 전해주려는 것이다. 늦기 전에 말이다.



[[헐, 이제 되는군. 내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 안되는 줄~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 ㅠ]]




물론 나는 지은 죄가 많아, 인간으로 환생할 확률이 아주 낮다. (생각 컨대, 윤회가 정말 있는 것이라면, 그 친구는 가뿐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나는 장담할 수있다. 죄가 많은 나는 그 친구와 어긋 날 가능성이 높다. 한 번 어긋나면 또 억겁의 시간이라도 기다려야겠지만 말이다)

듣자니 송만공 스님의 전생은 소(丑) 였다고 만공스님 스스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스님도 까딱하면 소로 태어나는 마당에 내 자신이야 말할게 어딧겠나.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이미 틀렸지 싶다. 이럴줄 알았으면 내가 좀 더 일찍 철이 들었어야 했는데...후회가 막급이다.


만공스님의 전생 얘기나 나왔으니 말인데, 만공스님의 3전생은 기생이었다고 만공스님께서 직접 김일엽 스님께 말씀하셨다. 그 기생은 돈을 벌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시하고, 절에 계신 스님들께 또 보시를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이던가. 기생으로 살면서 생전에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하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다. 직업에 귀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의 귀천을 가르는 것은 직업 자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만공스님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잠깐 당황했던 것은 환생에 남녀의 구별이 따로 없다는 점이었다. 만공스님의 말씀으로 추정컨데,  男이 女로 태어나기도 하고 女가 男으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환생시 고유의 성별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미궁에 빠뜨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가 소로 환생하기도 하는 마당에 그깟 성별이 대수겠는가!                                                                 


그러나 내가 미궁에 빠진 것은 만에 하나 내가 환생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 친구를 지금 그대로 만나고 싶은데 성별이 달라지면 어쩌나 싶은 것이다. 내가 환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이미 지은 죄가 많아 그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겠지만 행여라도, 혹여라도 아주 작은 희망을 가지고 바래본다면 바로 이 친구와의 인연을 기대하는 것 뿐이다.내가 사경을 하는 마음은 이러한 심정이다.

사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제 아무리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번의 사경을 한다 한들 나의 환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불경은 기복을 가르치는 경전이 결코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고(苦)를 멸하고 열반에 드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흔히 네 글자로 압축한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이 네 글자 안에 어찌 사적인 기복이 들어설 자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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