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알라디너께서 페이퍼를 통해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애도함과 동시에 철저한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평소 시대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던 나는 알고 보면 비겁하게도 그 순간을 잊고 싶어했다. 그 알라디너의 글은 그렇게 비겁해진 나의 정신을 강타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감사의 뜻과 공감의 뜻을 표하고자 댓글을 시도했으나 댓글 기능을 사용할 수 없는 서재였다.
아쉬움과 함께 내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하여 댓글을 달지 못하고 예정에 없던 글을 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조사와 더불어 책임자를 모조리 강력 처벌하는 것이 공정이고 민심이다!!!
이태원 참사가 있던 그 날, 그 시간에 나는 현장에 있었다. 본업의 업무량은 조절이 가능하므로 할로윈 행사가 있는 이틀 동안 지인의 점포에 나와 아르바를 했다. 지인과의 인간 관계 그리고 본업 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외딴 업무의 색다른 느낌, 그리고 젊음이 가득한 시공은 나를 매번 즐겁게 했다. 그 해는 년 2일 짜리 아르바를 시작한지 정확히 5년 째가 되는 해였다.
그렇게 아르바를 하다가 점포의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젊은이들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누워있고, 구급 대원들은 그들의 목숨을 살리기위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그 상황!! 도저히 믿기 어려운 상황! 원인도 모른 채 나는 그들을 향해 제발 숨을 쉬어야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절망이 엄습해왔다.점점 희망도 사라져갔다.자신의 땅에서 그리고 머나 먼 이국 땅에서 그 얼마나 두렵고 또 두려웠으랴!!
그 날의 참사가 있고, 집안에 틀어밖혀 나는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사흘 째 되던 날 늦은 밤, 소주를 사서는 버스에 올랐다. 421번 버스는 강남역을 지나 이태원 역 해밀턴 호텔 앞에 정차 했다. 가족, 친지와 친구들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이태원 역을 가득 메웠다. 산 자가 차마 마주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전해왔다.
그들의 젊은 넋 앞에 술을 따르고 애도했다.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 집으로 가는 421번 막차가 반대 편에서 오고 있었지만 차마 나는 그 차에 오를 수 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앞에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식을 앞세우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한 그 커다란 아픔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그 슬픔을 말이다.
조조의 세째 아들이었던 조식도 어린 여식을 앞세운 사람 중 하나 였다. 그래서 였던지 조식은 겨우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났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은 아프다 못해 스스로 자신들의 수명도 힘께 앗아가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명마저 서서히 앗아가는 산 자의 그 아픔을 본인이 아니고서 과연 누가 알수 있으랴! 조식은 여식을 잃은 아픔을 다음과 같이 썼다.
行女哀辭 행려애사
ㅡ조식
伊上帝之降命, 何修短之難裁
이것이 정녕 하늘의 뜻이련가
이토록 짧은 만남을 짐작이나 했더란 말인가
感前哀之未闋, 復新殃之重來
슬픔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큰 재앙으로 닥쳐오는구나
方朝華而晩敷, 比晨露而先晞.
무궁화는 이른 아침에 피어 늦은 저녁이면 지고
새벽 이슬은 볕에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天蓋高而無階, 懷此恨其誰訴
하늘은 높고 오를 길은 따로이 없으니
이 가슴의 한을 그 누구에게 하소연 하랴!
문심조룡은 弔(조)와 哀(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弔는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분께 드리는 말이라고 쓰고 있다. 문심조룡이 哀에 대해서 말 하기를, '短折曰哀 단절왈애, 必施夭昏 필시요혼' 이라고 했다. 이 말은, 젊어서 세상을 하직 한 사람에게 주는 말이 哀인데, 반드시 젊어 세상을 등진 사람에게 해준다, 라는 뜻이다. 시호법에 그렇게 규정이 되어있다는 설명을 덧붙인 문심조룡의 이 문구는 오늘 너무나도 나의 가슴을 시리고 저미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