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나이가 들고 보니 쓸 수 있는 말보다 쓸 수 없는 말들이 많아진다.
잘한 일보다 못한 일들이 앞을 먼저 막아선다.
이렇게 비겁해지는가 보다
한 때 겂없이 설치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무시하려 할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눈 그런 마음의 자를 버리지 않고 있다
사회는 부조리하기 때문에 나의 반항심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만큼 나이가 들고 보니 나의 반항심이 타인의 반항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거기에 대항하고 억누르기가 어려워
매일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항상심을 갖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들뢰즈가 말했다. '나는 시간에 의해 분열되어 있다'고,
맞는 지는 모르겠다. [차이와 반복]을 읽고 나서 남은 것은 저 한 문장이다.
나는 시간에 의해 분열되어 있다.
과거의 나와 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같지 않다.
다 다르다
다른 시간 속에 수많은 나들이 공존하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수없이 많아진 나들의 간섭으로 인해
매순간 흔들리고 반성하고, 고정될 수 없고, 확고 할 수 없어서
판단해야할 순간을 보류해버리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단순해지나보다
순간에 자신을 맡겨 버리고,
단순함과
순간의 득에 이끌려 나는 보수화되고 있다.
나는 어느순간 골수 보수가 되어가고 있다.
꼴통 보수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금 나의 공부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철저하게 시간 속에 분열되어 있는
마르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자는 어쩔 때는 이렇고, 저쩔 때는 저렇다.
일관성을 갖고 있지 않고 변덕스럽고,
일상을 쫓는 집요함이 지나쳐
뭐 이런 쫌생이 아저씨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좀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깊이 들어가서
매순간을 살펴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매순간 계산하고 따지고 이렇게 판단하고 저렇게 판단하는 순간 속에서
선택을 하는 인간이 있다.
이 소설이 위대한 것은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솔직했다는데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저리가 쳐질만큼 솔직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자기 내면의 부조리를 심하게 따지거나
그 근원을 밝히려 애쓰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통한 판단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단순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소설을 어렵다고 말한다. 어렵다고 판단하고 조금 읽고 던져버리려 한다.
그리고 연신 내뱉는다. 어렵다고, 단번에 읽혀지지 않기 때문에 단번에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살피고 살펴봐야 하고 집요하게 화자의 생각을 따라가야하고, 그의 혼란상에 동참해야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어렵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화자는 자신의 내면에 충실했고,
그 내면을 최대한 글로 옮기려 애를 썼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적확한 묘사와 감정으로 인해 감동을 주고
어떤 부분은 그 사유의 일관성의 상실로 인해 독자에게 실망을 준다.
나는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난감함을 느낀다. 이 책 좋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답을 할 때 망설인다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고
혼란스럽기도 했다고,
어떤 책은 재미있었다. 선굵은 서사를 따라가니 좋았고, 이해하기 편했다. 그래서 좋았다.
어떤 책은 서사를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문장이 남았다.
그 아름다운 문장에 내 영혼이 들렸다. 그래서 좋았다.
하지만 들으려는 사람은 좋았다 나빴다에 중점을 둔다.
좋고 나쁨의 강도와 그 이면에 관심이 없다
나도 그랬다.
모든 것에 문외한이었지만 책이 보고 싶었을 때
책을 읽는 즐거움을 갖고자 했을 때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렸고,
적어도 베스트셀러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더이상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리지 않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베스트셀러를 경시하게 되는 경향까지 생겼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된 것에 만족한다.
나는 나만의 책을 읽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려 한다.
그리고,
그 솔직함으로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위대한 마르셀과
좀생이 병자 마르셀
섬세한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는 마르셀
주변사람들을 면밀히 살피고
그들의 목소리를 감정상태를
온전히 되살려보려는 마르셀을 모두 보여준다.
비록 마르셀이 어떤 귀족성,
어떤 부르조아성,
어떤 속물성을 버리지 못한 보수주의자처럼 보일 망정
비록 마르셀이
어떤 가부장성
어떤 억압성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나는 그를
나는 그의 욕망을 존중할 마음이 생겼다.
그가 그의 주변사람들을 복잡하게
이해하려 애썼고,
그 이해의 노력이
흔히들 읽기 어려운 책이라 말하는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 말하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든 마르셀 프루스트든 제임스 조이스든
함부로 어렵다고 말하지 말았으면
그의 문장을 온몸의 세포로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 노력하지도 않고
섣불리 어려워서 접근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말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