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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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서재

다음이 궁금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다니 그것도 원서를... 그것은 정서적 공감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더 쉽게 읽어나간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자유와 방종이 판치는 나라에 가서도 딱 그 틀에서만 살아가야 했던 앞세대 부모들의 판에 박힌 고단하고 악착같은 삶은 이곳이나 그곳이나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싸가지 없이 자기 중심으로만 사는 케이시 한이란 인물은 낯설었지만 또 그럴 법 했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 아주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럴 법한 삶에 대한 이해는 또 할 수 있었다.

 엘라 심의 인생 또한 케이시의 엄마의 삶이 될 뻔한 데서 구원 받는다. 엘라의 삶은 케이시 엄마의 삶과 달라보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성격이 비슷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따뜻한 아버지와 새로운 연인에 의해 구원 받는다.

곳곳에 담긴 희망의 메세지가 약간은 억지스런 설정은 아닌가 의심하게 했다. 케이시에게 아내가 썼던 모자를 남긴, 노인의 이야기와, 엘라의 미모에 혼자서 마음을 끓이기만 했던 직장 동료에 대한 이야기, 의심스런 아내를 묵묵히 보아주던 과묵한 한국사람의 성정을 보여주던 케이시의 아버지. 과하지 않았다. 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면서도 한국사람들의 정체성을 하나도 버리지 않은 사람들. 그들의 삶이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너무나 한국적인 내면을 하고 있었다는데 이물감이 들었다. 그들이 만든 한인사회가 눈에 환하게 그려졌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과도하게 의지해서 한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미국 사회에 제대로 욱여 들기도 어려웠던 그들의 폭폭한 삶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들의 폐쇄성이 한없이 답답해 보이는 것은 내 앞세대와는 어쨌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자의 관찰정도에 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아직은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아보이는 작가의 눈이 넓고, 또 넓어 보인다. 아직 깊이는? 모르겠다. 그건 순전히 작가의 노력에 달려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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