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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서재
교수와 광인
대지의 마음  2008/08/31 11:33

'우리말의 수수께끼'란 책을 읽고, 다시 '우리말의 탄생'이란 책 앞에 선다. 이 땅의 지식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고 질문하게 된다. 영국의 최초의 제대로된 영어 사전은 완성하는데 거의 한 세기를 투자한다. 19세기에 있었던 옥스퍼트 영어사전편찬은 방대한 자료와 엄청난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예문을 갖고 제대로된 어휘해설을 위한 노력으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거의 70년이 넘게 걸렸던 방대한 작업의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귀족들이나 식자층의 것으로만 한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된 예문들을 가지고, 더불어 공부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참고문헌이 되기 위해 고혈을 투자한 셈인데, 그들의 그런 집요한 노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체 저들의 연구는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던졌다.

 우리나라보다 별로 크지 않은 나라 영국이 어떻게 대영제국으로서 전세계를 지배했던가 하는 것은 그들의 학문에 대한 강박적 집착에서 볼 수 있다. 배운 자들과 가진 자들의 결합이 이상적일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국가권력이 지지해주면서

70년을 넘게 투자한 노력은 여러권의 사전으로 탄생한다. 사전은 말의 어원과 변화를 모두 담으려 한다. 말 하나가 발생하여 죽는 모습을 담겠다는 발상 자체가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사전 편찬자들은 과연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사전은 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일제시대의 엄혹함을 견뎌내면서 해냈던 그들의 노고에 감히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70년이란 세월을 넘게 투자하고, 어떻게 대충 마무리 짓지 않고 끝까지 제대로된 사전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노력에 비해 6년이란 세월은 미흡하기 짝이없는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주변의 언어들을 다양하게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의 연구와 맞물려들어가면서 다양하게 말의 어원을 살피는 영국인들의 집요한 연구에 대한 부러움도 함께 일어난다.

대체 이나라에서는 그런 노력조차 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영어몰입교육을 외치고 있으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학자가 한 생애를 투자해서 어떤 것을 완성했을 때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역사를 받고 있을 때, 세상은 어쩌면 합리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정신병자 마이너가 정신병원에 갇혀 가장 뛰어난 자원봉사자로 사전편찬에 도움을 주었고, 그를 소재로 한 소설이 쓰여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영어란 언어의 자신감은 아닐까? 한사람을 죽인 피해망상증 환자 마이너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될 여지를 만들어준 사전 편찬 작업.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정신병자였기 때문에 자폐적으로 갇혀서 책을 읽고, 책에 나온 어휘들을 창의적으로 종이에 적어나가면서 사전편찬작업을 하는 작업실에 있지 않았으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어휘의 예문들을 제대로 적어보내주었던 살인자이자 정신병자 마이너. 마이너의 인생이 불행과 자기 피해의식의 망상 속에서 헤매고 다녔던 고통속에 있었으나, 어휘를 적어내려가는 정신적인 노동을 통해, 슬모 없을 것 같았던 고상한 정신과 폭력적 정신의 소유자 윌리엄 채스터 마이너는 역사에, 영어라는 문자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새겨넣는다.

그것은 신이 어떻게 인간을 선택하는 지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신병자. 뛰어난 문학적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자. 그의 뛰어난 교양이 빚어낸 수많은 어휘들의 활개. '교수와 광인'은 과장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일이란 게 어떤 것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지식인적 노동의 실상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어떻게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 숙고해보게 해주는 책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말에 대한 어원을 살펴 수십년에 걸쳐 책을 한권 펴낸다면 내 자식들의 자식들은 우리말의 어원을 보면서 지적인 욕구를 불태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땅에서 그런 통일적인 지식의 정리를 향한 노력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대프니 메이저란 섬을 기억한다. 찰스 다윈이 들렀던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진화론을 끌어낼 수많은 생명체들을 보았던. 그 섬을 기억하고, 그곳 갈라파고스 군도 중의 한 무인도에서 수십년간 진화의 단초를 찾기 위해 관찰하는 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날씨의 변화를 통해 그 섬의 새들을 관찰하고, 그것을 수치로 환산하여 자연선택과 진화라는 접합점을 직접 눈으로 보고싶어 한다. 책에서 직접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들의 연구는 흥미진진하다. 그들은 시간과 싸운다. 지루함과도 싸울 것이다. 새들의 발에 표식을 붙이고, 새들을 잡아 자로 그들의 부리를 재고, 부리의 모양을 그리고, 먹이와 생태 환경에 따른 새가 어떻게 분화하는 지 분석하고, 다윈의 진화론의 옳고 그름을 다시 판단하는 집요하고 지난한 그들의 연구에 감탄했었다. 그런 그들의 연구가 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에서 기인한다. 그런 역사와 전통은 진짜다. 어떤 세계에도 내어줄 수 없는 대영제국의 힘이 아직까지 팔팔하게 살아 출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식민지에서 수혈을 받지 못해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들 정신세계의 부유함이 식민지 수탈에서 비롯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도 한다지만, 식민 모국의 지식은 쉽게 지나가는 바람이나 한순간의 열정이 빚어낸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이 두 책을 통해 체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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