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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 우리 세희
  • 조해진
  • 13,500원 (10%750)
  • 2026-05-05

부패한 윤리의식 갱신을 위해,  ‘우리’ 라고 부를 수 있기 위해

 

 


“그들이 내게 들려 준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 몸 안에 새겨져 있다.

숨이 멎는 날까지 내 피와 뼈에 저장된 그들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분실되지 않으리라.”  -116쪽

 

“‘우리’ 세희, 함께 기억하기 위하여”라는 조해진 작가의 말에 담긴 지향(指向)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록새록 깊숙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우리’라고 말하여야 하고 말 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감히 타인이 껴안아야만 했던 고통의 내밀함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 내 몸에 새겨지듯 치밀어 들어오는 관계성에 대한 배움과 적극적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일 게다.

 

한글 이름 세희는 화자인 미술평론가 남연주의 엄마,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일본에 사는 한반도 출신의 무국적자를 가리킨다. 일본명 미나가와 히로코, 어머니 아버지를 오마니, 아바이로 부르며, “히로코가 그저 몸에 맞는 옷이라면 세희는 보호막 같은 옷에 가까웠다”고 말하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대학졸업 후 취업한 일본 회사에 협력 업체로 드나들던 한국 남자와 결혼하여 한국에 거주하게 된 연주의 엄마다.

 

“1940년대 후반 제주를 혼란에 빠뜨린 제노사이드를 다룬 신작”을 발표하는 제이비 류라는 설치미술작가의 작품전과 작가 인터뷰기획을 취재하기 위해 도착한 영국 런던에서의 사흘에 걸쳐 마주하게 된 이방인으로서의 낯선 현실과 기억의 기록이다. 도착한 첫날 런던의 밤 거리에서 두 백인 남성이 연주를 향해 “니하오가 담배를 피우고 있네, 칭챙총 칭챙총...”, 아시아인을 향한 이 명백한 조롱, 차가운 돌덩어리 같은 모멸의 감정이 스스로를 향한 분노로 치밀어든다. 그녀의 기억은 쪽바리, 매국노라며 저들끼리 웃어대며 슬픈 공포심을 안겨주었던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로 향한다.

 

1942년 원산에서 오사카 항만공사 인부로 강제 징용되어 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엄마 세희는 자이니치로 분류되어 사실상의 무국적자이었으니 단 한 번도 일본 사람이었던 적이 없음에도 한국의 이웃들은 끝없이 악의적 뒷담화로 조롱하고 멸시했음을. “아무 잘못이 없어도 내력이 죄가 되고 죄로 수렴되는” 한국에서의 삶, 엄마 세희를 향한 이 시선들은 국가의 무능과 잘못을 어느 순간인가부터 피해자인 개인을 향해 마치 개인의 허물인 듯 바라보도록 한 권력의 오랜 세뇌였을 것이다.

 

엄마 세희의 아바이, 연주의 외할아버지 박태식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간부로 “북한을 저버리고 일본에 귀화하는 자이니치들을 경멸하는 사람”으로 딸 세희를 검정색 치마와 흰색 저고리를 입고 다녀야 하는 민족학교를 고집했다. 일본 사회에서 이 뚜렷한 복식이 그네들에게 어떤 반감을 불러일으켰을지 상상하는 데에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다. 무관심으로 가장된 경멸, 어린 소녀에게 그 시선과 무례에 대한 반항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움과 서글픔이 섞인 혼탁한 외로움”은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의 무게가 되었을 것이다.

 

여섯 살 위 스물두 살의 오빠는 고집스런 아바이에게 “세희는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자고”, 자신이 졸업하면 북송사업에 지원하겠으니 세희에겐 그 무엇도 강요하지 말자는 설득으로 고등학교부터는 일반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미나가와 히로코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지만 자이니치는 그저 조센진일 뿐, 교실에서 물건이 없어지면 무조건 오세희가 제일 먼저 용의자로 지목되는 차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엄마의 말, 그 기억이 런던에서 이방인으로 겪게 되는 자신의 모멸과 겹쳐 흐른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자주 찾던 북촌에서의 남녀 두 어른과의 만남, 서정우 선생님, 선생님의 아내 기쿠치 사치에 센세는 엄마 세희와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이어야 하는 서로의 삶을 위무하는 그런 관계 맺음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나 자이니치에게는 공무원도 기업 취업의 문도 봉쇄되어 빠칭코 매장의 매니저로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던 선생님과 엄마 세희의 만남의 사연, 자이니치를 위한 시위에선 늘 맨 앞에서 구호를 외쳤던 전사나 다름없었다는 엄마의 얘기를 떠올린다. 이처럼 연주는 “엄마의 영혼을 구성하는 입자가 단 한 번도 그녀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암 투병 중 마지막 말처럼 연주에게 남긴 말, “우리 오마니와 아바이, 그리고 오빠를.... 잊지 말아줄래?” “잊지 않아...” 아바이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북송선을 타고 이북으로 간 오빠의 죽음에 대한 부모에 대한 원망, 자신을 위한 오빠의 희생이라는 죄책감과 더불어 결혼 이후 자기 부모와 단절한 삶을 살았던 엄마와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오사카 이쿠노구 골목에 있는 첫 외갓집 방문에서의 다감한 외조부모의 따뜻한 정감을 떠올린다. 엄마가 죽고 난 이후 치매로 요양원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의 방문에서 연주 자신을 발견하고 세희야, 라고 부르는 외할머니, 오세희를 연기하는 연주가 그 연기가 어렵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은 이미 연주가 오세희를 자신의 몸에 완벽하게 새겼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이후 왜 일본에 있던 한반도의 사람들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까? 국적 없는 이들의 필요서류 작성 불가, 받지 못한 노임으로 무일푼으로 당장 살아가기조차 곤궁한 이들의 처지, 설혹 밀항으로 고향을 찾아 떠났지만 일경(日警)을 승계한 한국 경찰의 무조건의 사상범 취급과 갖은 고문 끝에 길거리에 내버려져 다시 남루하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 일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이어진다. 제이비 류, 한국의 성씨인 류가 드러나는 인물과의 인터뷰는 그의 가계에 대한 이야기 속 할아버지 류성철의 이야기로, 해방 후 돌아간 고향 제주를 지배하던 광기어린 살의, 이승만 독재정권이 도민 모두를 심판과 처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던 시대를 들려준다.

 

사랑하던 연인이 해안가 절벽에 무참하게 뭉개져 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된 사연, 그녀의 시신을 몰래 매장했다는 사유만으로 숨어 지내야 했으며, 그를 숨겨준 사촌이 살해되고, 돌아간 집에는 이미 끌려가 처형된 부모의 소식만이 고통스럽게 나뒹군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그 어떤 다름도 수용할 수 없이 극단적인 전체주의의 독단성을 띰으로써 살아갈 수 없는 지대였음의 한 조각의 기억이다. 일본계 영국인 제이비 류의 가계는 그렇게 우리와 무관한 듯 보이던 사람에게서 우리들이 지워버리고 방치한 역사 속의 관계를 드러낸다.

 

엄마 세희가 단절했던 외조부모를 다시 찾게 되었을 때, 엄마는 연주에게 말한다. “외삼촌의 죽음에 부모의 오판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역사와 국가 차원의 문제였다고.”, 내가 부모님과 화해하지 않는다면 딸 연주에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모르는 상태로 자라게 함으로써 그분들의 사랑을 받을 기회까지 빼앗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고멘네(ごめんね, 미안하다)라고. 낯선 일본 땅, 그치지 않는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그곳을 떠날 수 없이 묶인 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국가 공동체와 역사가 떠안아야 할 책임의 문제임을 증언한다.

 

연주, 그녀를 부르는 선생님, 센세, 외할머니의 욘짱은 그렇게 "알지 못하던 이국의 그들이 자신의 뿌리이자 가족이었음을, 아니, 바로 그녀 자신이었음을" 몸에 그려 넣는다. 한 덩어리 배신감만을 안기던 조국은 그들을 내치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끌어안으려 하지 않았음을, 이 작품은 우리 공동체가 너무 쉽사리 타자로 치부하는 존재들에 대해 그들이 바로 ‘나’임을, 그래서 그들의 기억이 바로 우리 몸의 기억임을 되살려내고자 하는 것일 게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 ‘우리’라고 말 할 수 있는 공감을 향한 치열한 노력이어야 하는 것임을. 우리의 역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가능치 않게 하는 그런 불온한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이 어찌 개인이 떠안아야 할 시선이고, 배제되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들이 내 몸 안에 새겨져 있으며, 단 한 줄도 분실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연주의 목소리는 바로 우리들의 것임을 외면할 수 없다. 자이니치(在日) 뒤에 동포, 교포를 붙이는 건 민족개념으로 제한된 배제의 표현이고, 이어 한국인을 붙여 쓰면 고국 분단 이전의 북한 출신을 제외하는 표현이기에 ‘자이니치(在日)’로 규정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올바른 규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볼 것이다. 우리들의 언어, 무심한 시선과 행동에 얼마나 많은 차별과 배제를 담고 있는가, 결코 우리들의 몸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이 흔적들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역사적 고통의 재현은 제아무리 완전을 지향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초월의 폭력성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그래서 현재의 언어로 환원할 수 없는 고통의 실체에 대한 우리네 윤리적 자기 한계에 대한 고뇌는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제주 4.3의 가공할 잔악한 폭력, 자이니치가 겪는 이중의 차별에 놓인 또 다른 폭력의 시선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모두 주워 담을 수 있겠는가. 다만 우리들은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에 압도되어 냉담함과 잔인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하나의 서사를 통해 거듭 새롭게 우리들 윤리의식을 갱신해야 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감히 ‘우리’라고 말 할 수 있기 위해, 아니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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