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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식
  • 횔덜린의 광기
  • 조르조 아감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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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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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의 초상, J. G. 슈라이너의 목탄 드로잉, 1826】

 

생명(生命)정치를 주창해 온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이 책은 부제인 ‘거주하는 삶의 연대기’가 말하듯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인 횔덜린(Hölderlin, 1770-1843)의 시적 삶의 나날을 통해 ‘인류의 삶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것은 비록 진지한 문학비평의 언어로 진술되고 있지만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책의 구성이 이미 그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까닭인데, 횔덜린의 1806년에서 그가 운명(殞命)하는 1843년까지의 연대기와 상당한 기간을 겹쳐 동시대인인 괴테의 연대기적 일기와 병행한 것이 지닌 의미이다. 인간의 삶이란 고작 거주하는 것일진대. 그것을 마치 소유 가능한 것처럼 지껄여대는 인간과의 대비를 통해 시적(詩的) 정신의 궁극적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독서로 이어지기 전에 발저의 산문에 빠져있었다, 발저의 산문들에 진열된 인물들은 그가 누구를 말할지라도 그것은 그의 모습이었는데, 1915년에 쓴 산문 「횔덜린」에서 선배 시인을 이렇게 묘사한다. “횔덜린은 자유를 잃었으므로 자신의 행복이 파괴되었다는 걸 잘 알았다. 자신을 칭칭 감은 사슬 (...) 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는 이 절망에 빠진 상처투성이의 예술정신은 “수려한 의상을 걸친 무용수처럼 높이 솟구쳤다“고 쓴다. 파멸하고 있다고 느끼는 동안 황홀한 절창의 시를 썼다고. 발저는 횔덜린의 하나의 끝자락이다. 또한 횔덜린은 루소의 ‘산책자의 몽상’의 한 자락이다. 물론 이러한 계보는 소위 ”문화를 규정해 온 범주들의 대립 - 능동/수동, 공적/사적, 이성/광기, 가능성/현실성, 의미/무의미, 통합/분리 등 - 을 무력화하는 전형“이라는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아감벤이 기술한 이 책의 연대기로 돌아가자. 1806년부터 책장의 좌우로 왼쪽 지면에는 괴테의 일기를 중심으로 하는 소유적 삶의 세계의 기록으로 읽힌다. 그리고 오른 쪽 지면에는 횔덜린의 삶의 기록들이 연대기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독자들은 지면의 좌우를 번갈아 읽으며, 왼쪽 지면의 괴테의 삶의 형식에 불쾌함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 아감벤의 의도였을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특별히 괴테를 별도의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연대기의 몇 부분만 소개하면 이렇다.

 

1806년 10월 14일, 프랑스군대가 프로이센군을 크게 격파했다는 소식을 들은 괴테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성문으로 프랑스 군대를 마중 나가 포도주와 바이마르에 프로이센군이 없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자신의 집을 제공하겠다고 통지하는 계략을 통해 자기 재산의 약탈과 소실을 피한다. 적극적인 적국에 대한 부역이다.

 

10월 15일 나폴레옹 군대가 바이마르에 도착한다. 괴테는 일기에 “황제(나폴레옹)가 도착하여 궁정에 갔다”고 쓴다. 괴테는 나폴레옹이 바이마르 공국을 해체할 때 자신의 연금과 자기 소유 아닌 집과 원고들을 잃을까 걱정하여 급하게 결혼을 치른다. 이때 횔덜린은 그의 어머니의 조치에 의한 정신병원에 강제 유치된다. 왕실 재무부는 불우한 여건의 장학생이었던 횔덜린의 회복을 위한 150플로린의 지원금 제공을 허락한다. 괴테는 체로 불을 붓듯 자신의 돈이 줄줄세고 있다며 포크트 장관에게 200탈러의 돈을 요구한다. 11월 12일 “괴테는 쇼펜하우어 부인이 집에서 유난히 기분이 좋았고...“, 횔덜린은 광증 환자의 치료를 위한 수은치료 약물을 삼키고 있었다.

 


1809년 괴테의 편지는 그가 사는 형태의 또 다른 민낯이다. “귀족 및 최고 부르주아 인사들이 게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이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궁정 안내원을 적절히 배치해야” 하며..., 이후의 내용들은 가히 역겨운 계급의식과 차별의식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런 기록들을 지속하는 것은 내 수고의 낭비일 것 같아 여기서 줄인다. 이때(1809년 5월) 프로이센군으로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전했던 횔덜린의 친구들 제켄도르프, 야코프 츠빌링 등이 전사한다.

 

제켄도르프가 케르너에게 보낸 전사하기 2년 전인 1807년 2월의 편지에는 “관계도, 보살핌도 없이 고통 받는 마음에 위로와 만족이 될 우정도 없이 버려진 친구 횔덜린의 운명”에 마음 아파하는 심경이 쓰여 있다. 1807년 5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횔덜린은 네카 강변 슈타인라흐 계곡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목수 에른스트 침머의 탑이 있는 집 꼭대기 층에서 1843년 폐질환으로 사망할 때 까지 36년을 살았다. 이 36년에 걸친 한 위대한 시인의 연대기는 그것에 그 어떤 수사나 설명, 해석이 불필요하다. 날들의 일기와 편지, 방문객들의 소소한 기록들, 그네들의 저술에 표현된 횔덜린과의 일화와 횔덜린이 써준 시들, 만남의 인상들이 그대로 심오한 하나의 일관된 철학, 거주하는 삶이라는 시인이 몸소 실천한 삶의 태도와 형식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모범으로 다가온다.

 

아감벤은 이러한 나날의 일상적 기록들로부터 “자기 자신과 세계 전체와의 관계 안에서 고유한 방식의 연속성과 응집성을 지닌 삶”으로서의 ‘습관적 삶’ 혹은 ‘거주하는 삶’을 “무한한 연결”, “무한한 통일”이라 해석하고 있지만, 그렇게 현학적 언어로 구태여 고상을 떨 것까지는 없다. 횔덜린은 근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몰고 온 소유하는 삶에 부착된 그 탐욕스럽고 타자의 세계를 몰살시키는 문명적이라 일컫는 인간의 인위적 형태의 삶에 혐오와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며, 이를 위한 자신의 그 어떤 시도도 전환을 가져 올 수 없음의 직시였다. 여기에서 아감벤의 특출함이 있다면 시종일관 횔덜린의 광기에 대해 의심을 보내는 눈초리다. 횔덜린의 광기는 그가 의도했던, 순수하게 연출된 의지로서 시대의 인간들이 보이는 삶의 태도와 다른 형태를 보였다고 해독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독은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태도에 대한 반항으로서의 삶의 태도이다. 생애 만년에 이르기까지 노쇠에 의한 흐림은 있을망정 시인 횔덜린의 명료함과 총기는 사라진 적이 없다. 그의 시가 이를 입증한다, 다만, 그의 시어들, 즉 단어와 문장들의 논리적 연결 부재를 광기로 보았던 사람들의 이해는 그 연결 부재가 지닌 언어에 대한 시인의 시적 의지를 오해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대립의 교대 속에서도 연결성과 동일성을 이뤄야 하며, 시적 정신의 궁극적 과제는 (...) 하나의 순간을 보존하는 데 있다“는 횔덜린의 말 속에 이미 진실이 있음이다. 즉 횔덜린의 시 문장들은 분열되어 나오는 다양한 대립과 통일성 사이의 두 대립적 요소가 어떻게 일치하는지 그 가능성을 사유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지된 변증법, 혹은 휴지(休止)이론으로 말할 수 있는 단어와 리듬의 중단은 표상의 교체가 아니라 표상 그 자체가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말이다. 횔덜린의 시구들을 접해 본 사람들은 갑작스레 고립되어버린 듯한 동떨어져 보이는 단어와 문장들이 병렬로 연결된 문장에 당혹스러워하곤 한다. 횔덜린이 과감하게 중단하는 이러한 문장 형태는 의미의 흐름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독자적으로 드러내는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횔덜린은 헤겔식의 ‘정-반’의 반성적 통합으로서의 합의 변증법이 아니라 두 순간의 화해 불가능한 분리라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횔덜린은 궁극적인 ‘반-형식’, 즉 문자 그대로 ‘자연(自然)시(Naturpoesie)’를 직조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횔덜린의 시적 삶이란 그래서 그의 시대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사유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이를테면 인간적 삶이 무엇인가와 같은)을 향한 실천이자 예언으로서 수용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이 위대한 시인의 삶과 글로 구현된 일생의 행동은 오늘을 사는 우리네에게도 그대로 하나의 궁극적이고도 본질적인 삶의 형식을 가리킨다. 실패하게 운명 지워진 우리들의 삶의 형식에 대한 사랑 말이다. 아감벤이 괴테의 일기를 축으로 하는 연대기를 횔덜린의 그것과 병행하여 구성한 것도 바로 이러한 삶의 형식에 대한 뚜렷한 대조를 읽어내기를 기대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 그 대비를 그대로 발췌 인용한다. 대체 인간의 삶이란 거주하는 삶일 뿐, 그것이 소유의 삶이라는 불가능한 형식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출처: 본문 에필로그 341쪽 부분 발췌】

 

시적으로 거주하는 삶,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지는 삶이다. 그래서 습관적 삶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주어짐에 따른 삶으로 우리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고, 다만 거주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횔덜린의 광기는 사회전체가 깨닫지 못한 채 빠져든 광기에 비한다면 완전히 무해한 것이라는 아감벤의 말은 모든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했을 때 유일한 인간이 하는 삶의 모습을 이르는 것일 게다. 횔덜린이 운명하기 전에 쓴 그의 생애 마지막으로 쓴 시로 여겨지는 시 「전망, Die Aussicht」으로 책의 여운을 달래련다.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회복할 대안적 영역으로서 문학을, 시를 고뇌하는 사람들, 언어로 표현한계를 실감하는 삶의 총체성을 쓰기위해 애쓰는 사람들, 삶의 비밀에 다가가고자 그 열쇠를 찾는 사람들은 이 책을 발판 삼아 횔덜린을 읽어보세요 라고 감히 권한다.

 

「전망, Die Aussicht」

 

인간의 거주하는 삶이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포도 넝쿨의 시간이 저 멀리 빛날 때,

여름의 텅 빈 들판도 그곳에 함께 있고,

숲은 어두운 모습으로 나타나네.

자연은 머물고, 시간은 스쳐 지나간다.

완전함에 비롯된, 하늘의 드높음이 인간에게 빛나네,

마치 나무들이 꽃으로 치장한 것처럼. (18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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