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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금테 안경
  • 조르조 바사니
  • 12,150원 (10%670)
  • 2016-06-25
  • : 1,347


꼭 10년 만에 다시 조르조 바사니 작가의 <금테 안경>을 읽었다. 아마 그 때,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바사니 작가의 책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 읽지 못했던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성벽 아래서>도 이번에는 읽었다. <왜가리>와 <건초 냄새>까지 나왔다면 완벽했을 텐데, 그게 좀 아쉽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걸작은 다시 읽어도 항상 좋은 법이다. 소설 <금테 안경>의 화자는 바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서 내가 첼레스티노로 명명한 작가의 페르소나다. 그가 사는 페라라에는 베네치아 출신 아토스 파디가티 선생이라는 저명한 중년의 이비인후과 의사가 있었다. 그가 애용하는 "금테 안경"은 그의 분신 혹은 상징과도 같은 무엇이라고나 할까.

 

탁월한 의술과 친절함 그리고 세련된 진료로 파디가티 선생은 페라라 공동체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그런 인사였다. 그리고 재산은 자연스럽게 그의 노력에 응답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적어도 파디가티의 성적 취향에 대한 추문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편 페라라에서 볼로냐로 통학을 하던 첼레스티노와 친구들은 대학 강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볼로냐로 향하던 파디가티를 기차에서 종종 보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델릴리에르스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지난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델릴리에르스는 노골적으로 파디가티의 성적 취향을 조롱하고 놀림감으로 사용한다. 내가 보기에 델릴리에르스는 순수 악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척에서 관찰한 나, 첼레스티노의 감상과 기록이 이어진다. 바사니는 실제 있을 법했던 사건에, 자신의 감정을 추가하고 혐오와 배제로 무장한 이탈리아 파시즘이 부상하던 시절의 광기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금테 안경>의 서사를 완성해간다.

 

파디가티와 델릴리에스가 빚어내는 볼썽사나운 추문의 절정은 1937년 8월의 휴양지 리초네 부근에서 그야말로 폭발한다. 사실 그들의 기묘한 우정은 보수적인 페라라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물의와 논란의 대상이었다. 가십 전문가 라베촐리 부인에게 이 커플은 좋은 먹잇감이기도 했다. 독설가였던 라베촐리 부인은 나치를 찬양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해서 타당성과 위대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리고 3년 전에 있었던 나치들의 오스트리아 총리 엥겔베르트 돌푸스 암살사건에 대한 언급도 살짝 등장하기도 했던가.

 

신혼부부라며 조롱을 받던 둘의 파국은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그해 8월의 마지막 날, 언쟁으로 시작된 델릴리에르스와 파디가티의 다툼은 결국 청년의 주먹에 파디가티가 넉다운되고 기절하는 일대 소동으로 마무리된다. 현장을 목격한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이야깃거리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델릴리에르스는 파디가티의 모든 것을 챙겨 도망가 버렸고, 쓸쓸하게 홀로 남은 파디가티 선생은 결국 가진 돈을 다 털어 페라라로 귀환하게 된다. 문득 여기에서 금이 간 파디가티의 금테 안경은 앞으로 다가올 어두운 미래에 대한 암시가 아니었을까.

 

1937년 리초네에서의 여름이 첼레스티노와 다른 이들에게 화양연화의 시절이었다면, 그 다음부터 비극의 연대기가 시작됐다. 리초네에서의 추문으로 페라라에서 존경 받던 파디가티 선생은 병원에서 해고됐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급속하게 늙어갔다. 그보다 큰 사건은 1년 뒤부터 유대인들을 겨냥한 엄격한 인종법이 실시된다는 소식이었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박해와 학살의 미래가 올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여기서 바사니 작가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 어김없이 빌런으로 등장하는 파시스트 시아구라를 소개한다.

 

페라라 도시 곳곳에서 벌어진 배제와 혐오에 대한 전조는 주인공과 전도유망한 법학도 니노 보테키아리와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페라라 유대인 대다수가 지닌 도시 부르주아로서의 정체성을 자랑하고 심지어 자발적 파시스트였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인종적 배경 자체를 숨길 수가 없지 않았던가. 파시즘에 대해 아무리 완벽한 연대와 수용을 한다고 말해도, 그들의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나이든 성적소수자 아토스 파디가티의 극단적 선택에 소식을 신문에서 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전에 화자의 아버지는 잠시나마 페라라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법이 절대 공포되지 않으리라는 유력자의 거짓말에 현혹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가짜뉴스는 현실을 잊기 위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파디가티는 절망에 빠진 화자에게 저항이나 거부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파디가티의 선택은 자신의 조언과 다른 결의 무엇이 아니었던가.

 

10년 만에 다시 <금테 안경>을 읽어 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실현을 위해 질주하는 실존이 아닌가. 자신의 거친 욕망이 좌절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환멸과 고독감에 대한 바사니 작가는 어쩌면 그렇게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바사니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처럼, <금테 안경>에서도 화자로 대변되는 청춘들이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절망감을 표출하는 서사도 과연 대단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서 조르조 바사니 작가의 소설들을 세 권을 섭렵했고, 이제 <문 뒤에서>만을 남겨 두고 있다. 남은 3일 동안 무리 없이 다 읽을 수 있겠지. 오래 전에 읽은 책들을 다시 읽고, 휘발해 버린 감상들을 되살리는 재미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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