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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12,420원 (10%690)
  • 2023-11-27
  • : 109,688


 

책장 정리를 하면서 남길 책과 떠나보낼 책을 고르느라 연초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책들은 눈 딱 감고 정리했다. 그리고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전에 교보문고에서 한 번 읽고 나서 동네책방 책모임 도서로 선정되어 결국 샀다지. 동네책방에서는 연독을 하는데, 읽다 말았나 보다. 그리고 정리 도서 대상으로 지목되어 어제 정리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었다.

 

때는 1985년, 올해 39세의 석탄 목재상 빌 펄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전혀 몰랐었는데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읽으면서 그해 <라이브 에이드>가 열렸다는 걸 알게 됐다(1985년 7월 13일). 자수성가한 견실한 가톨릭교도인 빌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아일린과 다섯 명의 딸들이 있다.

 

사실 빌 펄롱은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미시즈 윌슨의 도움이 없었다면, 비빌의 유년시절은 더욱 어려웠겠지. 어머니는 빌이 12살 되던 해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빌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클레어 키건 작가는 현재 빌 펄롱의 삶을 파헤치기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그래야 나중에 빌이 하게 되는 일련의 행동들을 알 수 있고, 그의 심정에 동조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가장의 삶이 그렇듯, 빌 또한 가장으로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오늘도 일상의 짐을 묵묵하게 수행해 나간다. 자상한 가장은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들에 대해 아내 아일린과 상의하고 또 아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선물을 고를 줄 아는 센스도 장착한 남자다. 동시에 클레이 키건은 실업수당과 실업자들의 수가 증가하는 불경기의 혹독한 시기였던 아일랜드의 현실에 대해서도 소설 곳곳에 힌트를 남겨 둔다.

 

그리고 까마귀의 달이라는 12월이 시작됐다. 자기 사업체가 납품하는 수녀원에 들렀다가 빌 펄롱은 삶이 바뀌게 되는 일대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일하는 소녀가 그에게 구조 요청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차라리 배로강에 빠져 죽고 싶다고 했던가. 하지만 빌은 소녀의 요청을 무시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평판 좋은 세탁소에 대한 이야기가 그전에 등장한다. 아울러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소문도 작가는 잠시 언급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빌은 깨닫게 된다.

 

이 사건이 잠잠하던 빌의 일상에 작은 파문을 던졌다. 고민하던 빌은 결국 아내 아일린에게 내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일린은 그들이 수녀원의 소녀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책임도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건 빌이 원한 답변이 아니었다. 이미 다섯 딸들만으로도 빌과 아일린의 삶은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빌의 생각은 달랐다. 그 역시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아버지 없이 자랄 수가 있지 않았던가. 미시즈 윌슨과 네드의 도움이 없었다면, 빌의 어머니 역시 수녀원의 소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았을까. 마음 따뜻한 가장이자 가난한 이들에게 땔감과 동전을 아낌 없이 나눠주는 의인 빌 펄롱의 인간적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건 이후, 빌의 눈에 수녀원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사건은 12월 22일 일요일에 발생한다. 남들이 다 쉬는 일요일에도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야적장에 나가 납품할 물건들을 챙겨야 하는 빌의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게 다가오던지. 그리고 수녀원 석탄 광에 있던 엔다(세라 레드먼드)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자기 양심을 자극하는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빌 펄롱의 삶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미사에 참석하면 뭘 하는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스스로를 그는 위선자라고 규정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즈음에, 빌은 케호 식당에서 주인장 케호 여사에게 지역공동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수녀원과 척을 지면 안된다는 조언을 듣는다. 케호 여사는 마치 앞으로 빌이 할 행동을 미리 알고 있다는 투로 빌에게 그런 말을 건네준다.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척하고 여느 때처럼 평소의 일상을 영위할 것인가? 아니면 불의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던 의인으로 거듭날 것인가? 사실 그동안의 그의 행적에서 이미 빌은 자신의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다만 시기의 문제였을 뿐. 평안한 위선자의 삶 대신,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의인이 되기를 자처한 빌 펄롱은 다시 수녀원으로 가서 엔다, 아니 세라를 구출해낸다. 그리고 맨발의 세라를 데리고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지신이 선택한 행동 때문에 앞으로 온갖 고초가 닥치겠지만,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빌의 영혼은 구원받았으리라.

 

지난번 독서 때처럼, 순식간에 책을 다 읽고 나서 결국 이 책도 나의 책장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짧은 분량이라 정리하기 전에 재독을 하고 결정할 수 있었지만, 모든 책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또한 책과의 인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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