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7년 전,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저 유명한 춘수 씨는 이웃나라 한국 대신 인류문명의 시원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흐르는 땅 튀르키예를 찾았다. 우리 춘수 씨의 서정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글 솜씨야 다 아는 사실이고, 그가 과연 비오는 그리스와 불타는 튀르키예에서 무얼 보고, 느끼고 기록으로 남겼을지 궁금했다.
그의 그리스-튀르키예행은 아마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 위한 기획이었는지 사진작가와 편집자까지 동반한 그런 여행이었다.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튀르키예까지>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기행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그리스 정교의 성지로 알려진 아토스 반도 기행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우라노폴리스에서 뱃길로 아토스 반도와 외부를 연결하는 다프니라는 곳으로 향한다.
다프니 항구의 여권보관소에 여권을 맡기고, 아토스 반도에서 통행할 수 있는 체류허가증을 받는다고 한다. 역시 일반 관광지가 아닌 ‘신들의 정원’이라는 별칭답게 조건이 까다로운 모양이다. 아, 그리고 수도사들이 기도와 수도에 정진하는 곳이어서 그런 진 몰라도 여자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아토스 반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카리에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도보 여행길이다. 마라톤광, 달리기광으로 알려진 춘수 씨에게 그 정도 걷기는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동료들에게는 곤욕의 시간들이었나 보다. 스타브로니키타, 이비론 같이 정말 이국적인 이름인 수도원들을 춘수 씨 일행들은 순례한다. 아토스 반도에서 숙식을 모두 수도원의 호의에 의지해야하는 이방인들의 처지가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서도 춘수 씨는 먹을거리가 풍족해 보이지 않는 수도원에 둥지를 튼 고양이 가족들을 걱정해 주는 센티멘털리즘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진 찍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수도사들 때문에 그들의 풍채를 볼 수 없지만, 빈약한 먹거리에도 불구하고 뚱뚱하다는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수도사들이 춘수 씨들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만 맛난 것을 먹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젖기도 한다. 그런 깜찍한 발상이 재밌다. 순간, 역시 춘수 씨구나 싶더라.
그 외에도 필로세우, 카라칼르 그리고 그란데 라브라 등의 수도원을 일주한 춘수 씨네는 안나 아기아라는 곳에서 체류기간을 넘어 지내다가 결국 배를 세내어 다프니 항구로 그리고 다시 ‘문명세계’로 점프를 한다. 다시 속세로 돌아온 그들은 식당에서 푸짐하게 한상 차리고, 실컷 맥주를 퍼마신다. 역시 ‘신들의 정원’을 찾았던 이들조차 속세의 즐거움은 잊을 수가 없었나 보다. 성은 찰나지만, 속은 영원하다는 역설일 지도 모르겠다.
짧은 그리스 여행을 마치고 다음은 춘수 씨와 같은 나라 출신인 후지와라 신야가 자신의 책 <동양기행>에서 ‘광물의 세계’로 표현한 튀르키예로 춘수 씨들은 이동한다. 2부 타이틀에 적어 놓았듯이 튀르키예에 대한 하루키의 직접적인 인상은 차이, 군인 그리고 양이다. 차이는 튀르키예식 홍차로 어딜 가든 차이하네(차이를 파는 튀르키예식 카페)에서 차이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튀르키예 남정네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유럽 땅에는 이스탄불과 주변의 조각 땅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유럽국가 행세를 하며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되어 있는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사방에서 경찰과 군인들이 눈에 띈다고 한다. 이란과의 국경 근처에서 만난 군인들과의 사진촬영에 얽힌 에피소드 역시 흥미로웠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휴가 중인 군인의 사진을 찍는 것도 제재를 가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양과는 도대체 친해질 수 없는 하루키의 말에서는 문화상대주의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쨌든 모든 여행자들은 이방인이 아니던가. 각자의 취향과 입맛을 존중해 주자고.
춘수 씨는 일본인 특유의 상대방이 구사하는 지나친 ‘친절함’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루스 베네딕트가 여사가 <국화와 칼>에서 언급한 온[恩]이 문득 떠올랐다. 상대방에게 그런 온을 받으면, 되갚아야 한다는 그네들의 생각 때문일까. 이방인들에게 친절한 무슬림들의 속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무에진이 외치는 모스크의 기도시간 알림 정도 외에 춘수 씨는 철저하게 종교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비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것은 슬쩍 회피하는 작가 특유의 성향이려나.
춘수 씨들의 일정은 어느 순간 끝난다. 그는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의 자세를 고수한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항상 차이하네에서 외롭게 글을 쓰며 맥주타령을 한다. 이 책 이전에 <먼 북소리>라는 유럽기행 에세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 책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을 들어왔지만, 그의 대표작들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쨌거나 이렇게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누빌 수 있었던 춘수 씨가 마냥 부러워지는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