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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과거로의 여행
  • 슈테판 츠바이크
  • 12,600원 (10%700)
  • 2022-08-15
  • : 512


빛소굴 출판사에서 나온 <과거로의 여행>에는 두 편의 노벨레가 실려 있다. 어떻게 츠바이크의 책들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걸까. 아마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되어 출판이 되어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2013년 츠바이크에 대한 저작권이 소멸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빛소굴 출판사에서 나온 <과거로의 여행>을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 날 바로 <과거로의 여행>을 읽었지. 그리고 오늘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아무래도 후자에 더 방점을 찍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순전히 기억의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은 192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화자는 리비에라 바닷가 휴양지의 어느 펜션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대는 대전쟁이 벌어지기 10년 전인 1904년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잘 생기고,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잘 형성하는 이십대 청년의 등장으로 비롯됐다. 화자가 머물던 펜션에 있던 리옹 출신 뚱보 공장주의 아내 앙리에트와 야반도주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첫눈에 반해서 자신의 아이들과 부유한 공장주 남편을 내팽쳐 버리고 갑자기 등장한 연인과 도망가 버렸다. 한가하고, 타인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모두 이 사건을 두고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독일인, 이탈리아인 부부와 달리 화자는 도망간 앙리에트가 시도한 사랑의 모험을 지지하면서 토론은 곧 상호비방전으로 격화됐다. 여러 가설들을 부정하면서, 완벽한 진실만이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문제는 그 완벽한 진실을 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국 출신 67세의 C부인이 등장해서, 토론을 멈추고 팽팽하게 맞선 두 진영을 중재한다. 품위가 있고 나이가 지긋한 C부인은 무려 24년 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비슷한 사건을 재구성해서 화자에게 들려준다. 어린 나이에 군인 남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C부인은 나이 마흔에 남편을 열대지방에서 걸린 질병으로 잃었다. 배우자의 상실에서 오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의미함과 가치 없음의 감정은 바로 어제 읽었던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우연히 찾게 된 몬테카를로의 녹색 카지노 테이블에서 작고한 남편이 알려준 손들의 관찰법 대로 손들을 보던 C부인은 아름답고 열정으로 가득한 한 쌍의 손들과 만나게 된다. 그 손의 주인공은 탐욕과 광기로 가득한 도박에 미친 어느 인간(24세 정도)이었다. 승리의 감정과 실망을 오가는 그의 모습에서 발현된 "강력한 어떤 것"에 홀린 C부인은 도박판에서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무일푼이자 자포자기 상태가 된 청년을 구원하기에 이른다.

 

심연에 빠진 낯선 청년을 구원했다는 사실도 잠깐, 싸구려 호텔에서 깨어난 C부인은 수치심과 두려움에 빠져 도주를 시도한다. 하지만 자신이 맡게 된 구원이라는 과제를 끝내기 위해 청년과 짧은 여행을 하며 사악한 도박을 끓으라는 맹세까지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십대의 C부인은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게 아니었을까? 청년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마술적 자기기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광기에 가까운 열정에 휩싸인 C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구제불능의 청년이 다시 도박판으로 돌아간다. 그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정은 클리셰이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C부인이 한 때 도박에 미친 남자에게 품었던 비정상적이고 광적인 열정은 결국 망각이라는 이름의 시간의 위력이 해결해 주었다. 과거에 대한 강박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의 잔재들을 화자에게 고해성사처럼 풀어 놓은 C부인은 과연 구원을 얻었을지 궁금하다.

 

1929년에 발표된 <과거로의 여행>에서는 주인공 루트비히가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그야말로 독일식 에로티시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사장을 배신할 수 없는 그런 족쇄에 묶인 루트비히는 사장의 부인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야속한 시간들은 두 연인을 무려 9년 동안이나 갈라놓았고, 다시 만난 그들은 하이델베르크로 무작정 떠난다.

 

시간이란 마법은 관계를 더욱 더 공고하게 만들기도 또 반대로 모든 걸 부수기도 한다는 자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9년이란 시간은 루트비히와 사장 부인 모두에게 각자가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변모하게 만들기에 넘치게 충분했다.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던 존재와 함께 있지만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그 때와 달라져 버렸다. 바로 그 순간에 존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열정이라는 이름의 욕망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진실과 타협할 것인가. 어떤 선택이든 불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면 시간이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왠지 슈테판 츠바이크는 바로 그 뜨거운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찬양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 결과가 초래할 눈앞의 현실도 냉정하게 보라고 주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경계에 선 우리 인간의 고민과 갈등이야말로 우리의 숙명이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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