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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히틀러의 아이들
  • 수전 캠벨 바톨레티
  • 12,600원 (10%700)
  • 2008-12-29
  • : 371


 

5년 전에 산 책을 이제야 읽는다. 산 책은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읽는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책을 읽는다. 금방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긴 내가 책 한 권에만 목숨 걸고 읽는 게 아니니. 다 읽고 나니 속이 시원한 걸 그래.

 

1차 세계대전 후, 정치적 혼란과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던 독일 민족에게 오스트리아 상병 출신 베테랑 아돌프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의 출현은 구세주처럼 받아 들여졌다. 전투가 아닌 전쟁에 진 독일인들은 베르사유 강화조약으로 야기된 엄청난 금액의 전쟁배상금과 영토 할양 등의 굴욕적 조건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느닷없이 등장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나치)당의 히틀러는 독일 사람들에게 장밋빛 희망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없는 이들에게는 일자리를, 배가 고픈 이들에게는 빵을 주겠다는 간단한 슬로건보다 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호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더더욱.

 

책에서는 히틀러청소년단이라고 하지만, 원어는 히틀러유겐트였다. 책을 펼치면서 가장 뒤에 등장하는 제12SS 무장친위대 히틀러유겐트 사단에 대한 부분부터 읽었다. 청소년기를 히틀러 통치 아래서 보낸 독일의 청년들은 그 누구보다 맹렬하게 조국을 위해 연합군과 대항해서 싸웠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은 상대였던 연합군 병사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노르망디에 상륙한 이래, 압도적 공군력과 병력으로 독일 수비대를 몰아붙이던 연합군을 상대로 캉에 투입한 히틀러유겐트 사단은 그야말로 총탄이 다 떨어져서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할 때까지, 아니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싸웠다. 이 지점에서 히틀러의 가스라이팅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책의 초반으로 돌아가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가 되면서 전제주의 국가가 되는 모습부터 살펴보자. 히틀러를 필두로 한 나치 일당은 집권하자마자 독일 청소년들을 개조할 필요를 느끼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가스라이팅 작업에 착수한다. 집권 후, 라인란트 진주와 재무장 그리고 베르사유 협약에서 탈퇴하면서 전 국민적 지지를 얻기 시작한 총통에게 대부분의 독일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위대한 조국 건설이라는 대업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희대의 독재자이자 사기꾼이라는 속성을 파악한 아이들의 부모들이 총통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면 아이들은 지체 없이 당국이나 악명 높은 게슈타포에게 부모를 신고했다. 이런 방식과 과정을 거쳐 자유가 흘러넘치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경찰국가 제3제국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소년들은 의무적으로 히틀러유겐트 소속으로 편입되어, 어려서부터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실제로 고속도로 건설 작업에도 투입되어, 그야말로 손에 피가 흐를 때까지 곡괭이질과 삽질을 해야했지만 이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린 청소년들은 독일 시민으로서 당연히 감수해내야할 그런 임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소년들은 소녀들대로 조직되어 시골 마을에 내려가 육아와 요리 그리고 훗날 청년들이 전쟁터에 징집되어 갔을 때, 생산대 역할을 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과정을 경험하게 됐다. 이 모든 상황들이 나치가 미래에 대비한 전쟁 준비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 역시 빠질 수가 없는 아이템이다.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강제수용소와 대규머 가스 처형실 이전에, 히틀러 일당들은 독일 제국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진짜 독일 시민들을 비밀리에 대규모로 처형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다. 정신질환자나 장애인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강제수용소나 비밀병원으로 보내 제거했다. 이런 방식을 익힌 나치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 아인자츠그루펜으로 점령지의 유대인들을 처형할 수 없게 되자 가스처형실이라는 극악무도한 방식을 도입해서 수백만에 달하는 인원들을 학살했다.

 

독일의 모든 청소년들이 그렇게 무력하게 히틀러에게 맹종한 것은 아니었다. 훗날 백장미단으로 알려지게 되는 한스, 소피 숄 남매와 더불어 카를 슈니베 같은 청년들은 히틀러유겐트 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히틀러가 숨겨온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사실을 알리는 전단지 살포 같은 저항활동을 개시했다. 그들의 시도는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적어도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아무런 저항활동도 없었다는 오명만은 면하게 해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히틀러가 벌인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른바 히틀러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희대의 악당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니 한스나 소피 숄 그리고 카를 슈니베 같은 청년들이 그들보다 먼저 진실을 깨닫고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나오지만, 유대인 학살에 대한 전모를 모르고 있던 평범한 독일 시민들은 미군이 촬영한 홀로코스트 영상을 보면서도, 프로파간다라며 믿지 않았다. 히틀러 정권이 선전해온 가짜 뉴스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다시 한 번 알 수가 있는 대목이었다.

 

수전 캠벨 바톨레티 작가는 생존한 “히틀러의 아이들”과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 혹은 전화 같은 방식으로 인터뷰를 통해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렸던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한 세기만에 다시 전세계적으로 극우 정치들이 득세하고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되풀이돼서는 안 될 비극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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