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젊은 시절에는 양심이 부당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양심의 거울을 감히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이 양심의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160쪽)
중년이 되어도 양심의 거울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내 두 딸들은 나를 몹시 사랑한다네. 나는 행복한 아버지. 단지 내 두 사위들만이 나를 홀대하고 있소. 나와 사위들과의 불화 때문에 이 귀여운 딸들이 괴로움을 받는 게 싫소. 그래서 나는 남몰래 딸들을 만나기를 더 좋아하고 있소. 나는 이런 비밀스러움 때문에 자기 딸들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다른 아버지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즐거움을 맛보고 있소.(161~162쪽)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백화점에서 언제나 물건을 살 수 있는 부자보다 월급날만 물건을 살 수 있는 빈자가 더 즐거운 쇼핑을 하리라. 희소가치가 높을 테니까.
인간의 감정이란 가장 좁은 곳에서나 가장 넓은 곳에서나 똑같이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나폴레옹도 저녁을 두 번 먹지는 않았어. 성 프란체스코 교회 기숙생인 의대생보다도 애인이 더 많지도 않았어. 여보게, 우리의 행복이란 우리 발바닥에서부터 후두부까지 사이에 있는 거야. 일 년에 백만 루이를 쓰건 백 루이를 쓰건, 우리 마음속에서 본질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같은 거라네.(187쪽)
돈이 바로 인생이야.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315쪽)
인간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액의 상금을 타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서바이벌 게임을 관람하며 즐기는 재력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그 재력가들은 연애, 그룹 섹스, 술, 도박, 마약 등 보다 더 자극적이고 파격적이어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놀이를 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서바이벌 게임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지경까지 온 것으로 본다. 물질만능주의로 오염된 사회가 왜 위험한지를 잘 보여 준다.
그는 이 사회를 거창하게 나타내는 세 가지 표현을 보았다. <복종>과 <투쟁>과 <반항>, 즉 <가정>과 <세상>과 <보트랭>이다. 그런데 그는 결심할 수 없었다. <복종>은 귀찮고, <반항>은 불가능하며, <투쟁>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349쪽)

오늘 비가 와서 '비에 젖은 세상'을 찍은 사진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