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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심 없이 이 소설의 제목인 ‘비행운‘을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꼬리 모양으로 생성되는 구름‘이라는 뜻의 ’飛行雲‘으로 받아들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볼 때, 또는 더 높아서 비행기는 보이지 않고 비행운만 보일 때 드는 감정은 언제나 한결같다. 아련함과 왠지 모를 슬픔, 막막함과 동경.…다 늙어버린 지금도 그 모습만 보면 어릴 때 느꼈던 것과 똑같다. 살풋한 희망도 섞인 그 눈부심은 결국 어지러움만 남긴 채 사라지지만 여운은 길었다.

 

김애란 작가는 이 책 어디에도 제목에 대한 한자어를 남겨두지 않았다. ‘비행운’이란 단어는 <하루의 축>에서 인천공항 청소부인 기옥 씨가 이륙한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을 ‘안도의 긴 한숨 자국(p.176)’으로 표현하는 문장에만 한 번 나올 뿐이다. 나머지는 다 이미지와 상징으로 숨겨져 표현된다.

 

작가는 모질게 작정한 듯 여기에 수록된 8개의 단편에 불행을 심어 놓았다. 소설이 아닌 르포를 읽고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자세하고도 집요하게 어떤 이들의 쫓겨남과 비루함, 막막함을 드러낸다. 그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사람 사는 게 이래도 되는 건가 싶게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의미로 제목인 ‘비행운’은 불운이나 고달픈 현실을 뜻하는 ‘非幸運’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飛行雲’과 ‘非幸運’은 뜻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통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동경과 희망은 모두에게 성취될 수 없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지독하며, 거기에 ‘자본’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불운한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간 비행기가 남긴 흔적만 볼 수 있도록 남겨졌다.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의 <좋은 이웃>과 <빗방울처럼>의 소재와 비슷한, 이 책의 <벌레들>과 <물속 골리앗>은 집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에게 먹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집이 부의 상징이자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 것은 고대에서부터 있어온 일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다만 월급 받아 아껴 성실히 저축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무서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을 작가는 가감 없이 서술한다.

 

나머지 단편 역시 다양한 소재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지만, 모두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많이 바라지 않고 그저 의식주의 기본만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좌절하고 배반한다. 어쩔 수 없어서, 잘못된 선택으로, 그저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김애란은 그 잘못된 행위를, 변명으로 읽힐 수 있는 것들을, 쉽게 나쁜 것이라 단정하지 못하게 한다. 다시, 더 깊이 생각해 그들을 수긍하게 만든다. <하루의 축>에서 기옥 씨는 아들인 영웅이 범죄자가 되고 한 가족의 단란이 이렇게도 시시하게 망가지는 것이 어찌 이리 쉽냐고 반문한다. “엄마, 사식 좀.”이라는 영웅의 편지에 무너지지만, 그 사식을 위해 저녁 근무를 신청하는 기옥 씨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가 김애란의 글은 꼭 필요하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물속 골리앗』이었다.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 내용의 흐름이 완벽히 들어맞았고 그 절절한 문장에 전율이 일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와 거기에 고립된 소년과 그의 어머니, 타워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다 죽은 소년의 아버지, 끝내 죽어버린 어머니를 녹색 테이프로 칭칭 감던 모습, 모든 것이 물에 잠긴 곳에서 거친 물살에 그만 놓쳐 버린 어머니의 시체, 물속에서 골리앗처럼 서 있던 타워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가 발견한 사이다와 라면 한 봉지. 구조를 바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소년.…그 모든 것이 너무 슬펐고 아름다웠다. 여기에 온갖 의미를 다 갖다 붙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김애란 작가의 문장만으로 모든 것이 느껴진다.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일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을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에 뜬 노란 달을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달이었다. 비록 흐릿하긴 했지만 그걸 보니 엄마, 나무뿌리에 안겨 떠내려간 엄마 생각이 났다. 녹색 테이프에 감긴 얼굴로 오랫동안 내 쪽을 바라보던 모습도. 어머니는 지금쯤 어디 계실까. 어디쯤 가셨을까. 부디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 좋을 텐데.…그러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조그맣게 중얼댔다. “누군가 올 거야.” 칼바람이 불자 골리앗크레인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p.126]


『비행운』을 읽으며 영화 <만약에 우리>를 봤다. 소설과 영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서른>에서 만난 힘겹게 사는 청년들이 영화에 있었다. 정원(문가영)과 은호(구교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가난하다. 가난한 사람이나 연인에게 들이닥치는 여러 악재가 이들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나 부족한 돈이 그들을 헤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그저 변명일 뿐이다. 사실 그들이 헤어진 건 마음 때문이다. 특히 힘들어진 은호의 뒤틀림은 결국 정원을 떠나가게 한다.

 

정원과 은호는 헤어진 후 각자 자신이 원했던 길로 잘 간다. 그렇게 잘 가면서 왜 같이 있을 땐 안 되었던 걸까? 먼 훗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정원과 은호는 만약 그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헤어지지 않았을지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어 소용없지만,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우리 모두가 많이 하는 질문이다. 만약에 그때, 정원과 은호, 비행운에서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지금의 인생이 좀 더 나아졌을까? 힘들어도 마음만은 단단히 잡아 흔들리지 않은 너와 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내 집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은호야.

-정원

 


작년에 김애란 작가의 두 소설과 커피, ‘안녕이라 그랬어’표지의 북커버를 서재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이제야 보내주신 책을 다 읽었다. 비슷한 시기에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와 엄마를 여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와 나의 애도가 너무 차이가 났다. 난 담담했지만 그녀는 장례 후 일 년이 지난 후에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하고 따뜻해 난 엄마에게 미안했다. 마음이 점점 굳어지고 냉정해지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비행운’을 읽으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친구도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친구가 아니었으면 아마 이 소설을 영원히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좋은 책을 보내준 친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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