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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홈파티>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인 『보이체크』를 알게 된 것은 김애란의 단편소설 <홈 파티>에서였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인용하는 건 그 작품에 들어있는 어떤 의미를 가져오고 싶어서일 것이다. <보이체크>의 본문에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어 내용을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웠다. 세 번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확실한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1836년경에 쓰인 <보이체크>는 미완성 희곡이다.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출판업자인 카를 에밀 프란초스가 다시 정리해 1879년 뷔히너 전집에 넣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희곡의 주인공인 보이체크는 실존 인물이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가 1821년 어떤 과부를 살해하고, 1824년 라이프치히 시청 앞 광장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보이체크는 어린 시절부터 힘든 삶을 살아갔고 용병으로 군대를 전전한다. 군 생활을 마감하고 1818년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과부 우스트와 연인관계가 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자 보이체크는 칼로 찔러 죽인다. 그동안 보이체크는 실직해 일이 없는 상태에서 구걸과 노숙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상태였다.

 

[뷔히너는 이 사건에다 여러 다른 소재를 버무려 한 인간의 개인적 비극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여기서 비극은 목적론적인 운명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존재 목적이 다른 어떤 존재에 있다면 개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뷔히너는 그런 목적론에 반기를 든다.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ㆍ역사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적ㆍ역사적 결정론과 자기 소외는 뷔히너 문학의 주요 특징이다.

 

사회사적으로 보면 보이체크는 가장 비천한 계층 출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독일 최초의 비극이다....이 작품에서 그는 주체적 인간이 아닌 타인의 도구이자 사회적 상황으로 파탄 난 개체로 그려진다.

-p.373~374, 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역자해설 중에서]

 

 

이렇게 보이체크에 대한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졌다. 왜 보이체크에게 환청이 들리고 헛것이 보일 정도로 내내 불안해하며, 정신없이 쫓기듯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보이체크는 이발사로 대위의 시중을 들고, 완두콩만 먹으며 의사의 실험 대상이 된다. 아내 마리와 아기를 위해 쉴 새 없이 돈을 벌어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리는 남자들의 유혹 대상이 되고 결국 군악대장에게 넘어가고 만다. 보이체크는 본래 가지고 있던 불안과 세상에 대한 분노, 사랑에 대한 질투로 아내 마리를 살해한다.

 

김애란 작가는 『홈 파티』에서 배우인 이연의 입을 통해 “왜 보이체크는 자신의 진짜 적인 대위나 군악대장, 하다못해 의사도 아닌 마리를 죽였는지 모르겠다”고 질문한다.(p.31)" 이연의 말처럼 보이체크는 자신에게 ‘착하지만 덕이 없다’고 말하는 대위에게도, 자신을 짐승처럼 대하는 의사에게도, 아내에게 추근대는 군악대장에게도 아무 반발을 하지 못한다.

 

전염병의 영향으로 모든 바깥활동이 제약을 받을 때, 이연은 대학 동기인 성민의 초대로 오대표의 홈 파티에 가게 된다. 모 대학의 반년짜리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마음 맞는 몇 명이 집에서 만나는데 특별손님으로 끼이게 된 것이다. 계산이 정확한, 상류사회에 속한 그들은 처음에는 이연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 결국 돈에 대한 얘기에 집중한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그들 안의 생각으로만 정리한다. 그들에게 보이체크는 고유명사에 불과한, 아는 체하기 알맞은, 한때의 추억일 뿐이다. 보이체크와 같은 부류의 타인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부담 없이 가볍게 간 이연은 평소 술을 좋아하면서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물만 마신다. 자신과 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그저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러다 점점 그들의 생각과 말에 불편해진다.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와인을 마시며 그들의 말에 반박하고 급기야 먼저 집에 가겠다고 일어나면서 오대표의 80년 된 영국산 빈티지 커피 잔을 와장창 깨뜨리고 만다.

 

이연은 흔들렸지만,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 이연이 보이체크에게 품었던 의문을 이연 스스로 답해주고 있다. 보이체크의 분노가 위가 아닌 아래로 향했듯이 이연 역시 자신이 흔들리고 실수하고 만다. 왜 항상 그들은 성처럼 굳건하고 완고한데 ‘그 나머지’ 사람은 실수하고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지....물론 이연과 보이체크를 그대로 비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불안과 허무, 소외를 느끼는 쪽은 항상 ‘그 나머지’ 사람 쪽이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는’ 이연과 보이체크는 각자의 방식으로 쓸쓸하고도 허무하게 홈 파티와 무대에서 내려온다.

 

[그렇지만, 아니 그렇다 해도 이연은 이 연극을 이대로 마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연은 무대에서 중요한 대사를 치기 전 순간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며 거실 창문 너머 하늘을 봤다. 미세먼지 탓인지 달이 비현실적으로 붉었다.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p.42, ‘홈 파티’ 중에서]

 

 

<당통의 죽음>

 

’혁명‘이란 단어처럼 이율배반적인 것이 있을까! 고통의 과부하에 짓눌리다 필연적으로 뭔가를 전복시키지만, 분명 혁명의 목적은 민중의 해피엔딩이다. 그 과정에서 폭력과 죽음은 어쩔 수없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만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알다시피 프랑스 혁명은 과정이 워낙 복잡하다.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은 에베르파가 처형된 후 당통마저 사형당할 때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p.239, 작품해설 중에서)’ 여기에는 국민공회 대의원과 공안위원회 위원 등 여러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실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는 당통파에 대한 숙청을 계획한다. 당통은 맞서든지, 도망을 가든지 해야 하지만, 이미 혁명에 대해 전의를 상실하고 피로감에 젖은 당통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열렬히 원하고 실행시킨 혁명의 결과가 그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에 대해 당통은 허무함을 느낀다. 당통이 죽고 얼마 뒤 단두대에 올라 갈 로베스피에르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정적을 제거하고 혁명을 계속 진행한다.

 

프랑스 혁명이 남긴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이 이 희곡도 복잡하다. 일단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면 좋고,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사이의 의견 차이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차이에 대한 서로의 이해 부족은 모든 권력이 가진 속성이자 민중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혁명의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폭력과 공포가 따른다는 사실도 아이러니다.

 

[당통: 무(無)안에 있지. 어디 한번 무의 세계보다 더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곳에 빠져 보게나. 최고의 안식을 주는 것이 신이라면 무가 곧 신이 아닌가? 하지만 난 무신론자야. ‘그 무언가는 무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은 지긋지긋해. 그런데 나는 그 무엇이야. 비통한 노릇이지! 창조가 자리를 다 차지하는 바람에, 무의 자리는 텅 비어있어. 어딜 가나 창조가 득시글거려. 무는 자살했고, 창조는 무의 상처야. 우리는 무의 핏방울이고, 세계는 무가 썩어 가는 무덤이야.

-p.188]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은 <당통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이다. 발자크,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의 여러 소설에서도 이 시기가 다뤄지기에 한 번쯤은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다. 노명식 선생이 쓴 이 책은 ‘프랑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한국 대학생들과 일반 독자들이 근대 시민혁명의 전형인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에 전개된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도록 기획’되었다. 선생의 말대로 이 책은 쉽게 읽히며 연대기 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여러 각도에서 다채롭게 프랑스 혁명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다만 내용이 워낙 많아 요즘처럼 돌아서면 까먹는 내 뇌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할지 걱정된다. 역사는 암기가 필수인가보다.



 

 

 

 

 

 






<레옹스와 레나>

 

뷔히너의 유일한 희극인 『레옹스와 레나』는 희극작품답게 언어유희와 풍자가 가득한 극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의 희극에서 보이는 왁자지껄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은 오히려 비극적 인물인 햄릿을 닮은 레옹스 왕자의 내면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 세상 모든 것에 시큰둥하고 지루함을 느끼는 우울한 왕자 레옹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가 단짝인 발레리오(희극의 광대와 비슷한 역할)와 주고받는 대사는 그 어떤 것에 대비시켜도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발레리오는 레옹스를 ‘글자 없는 책(왕자가 자신의 삶을 빈 종이에 비유한 것을 빗댄 말)’이라고 하며 현실적 이기보다 이상주의자인 왕자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포포 왕국의 왕자인 레옹스와 피피 왕국의 공주 레나는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 페터 왕은 그들의 결혼식 날에 레옹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이다. 레옹스와 레나는 둘 다 그런 사랑 없는 결혼을 거부해 각자 이탈리아로 도망간다. 여행도중 우연히 한 여관에서 만난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이 희극에는 정치적 풍자가 많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경직된 관료사회의 모습을 ‘웃기게’ 보여준다. 신랑과 신부가 없음에도 왕은 체면이 깎이지 않기 위해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거리에 농부들을 동원시키고, 발레리오가 레옹스와 레나에게 가면을 씌워 자동기계라고 속여 그것으로 신랑 신부를 대신하자고 해도 왕은 받아들인다. 실체가 없어도 형식만 갖춘다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다.

 

가면이 벗겨지고, 레옹스와 레나는 서로의 진짜 존재를 알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정해진 날짜에 결혼식까지 진행되며 막을 내린다. 이 극은 행복한 결말을 맞아 전형적인 희극처럼 보이지만, 다른 희극에 비해 훨씬 더 진행과정이 치밀하고 연결과정이 매끄럽다. 대사에 들어있는 여러 비유도 의미가 깊어 생각할 것이 많다. 물론 이 극에 들어있는 유머도 좋다.

 

[왕자님, 제가 인간 삶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좀 씨불여 볼 테니까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는 상처 난 발로 추위와 뙤약볕을 뚫고 이 짐을 질질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녁에라도 깨끗한 셔츠를 한번 입고 싶어서요. 그런데 막상 저녁이 되면 이놈의 이마에는 주름이 파이고, 뺨은 움푹 들어가고, 눈은 침침해집니다. 그래도 이제 셔츠를 갈아입나 했더니 그게 수의인 거죠.....왕자님, 이제 여기서 응용과 실천이 나옵니다. 우리는 순전히 수치심 때문에 내면의 인간에게도 저고리와 바지를 입히고, 그 안에 속옷을 입히려고 합니다.

-p.216, 발레리오의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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