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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의 서재
  • 작은 일기
  • 황정은
  • 12,600원 (10%700)
  • 2025-07-11
  • : 53,380

작년(2024년) 12월 초, 작가(황정은)는 여전히 글을 썼다. 직업이 소설가이기에 당연히 글을 써야 했을 것이다. 세면대 밸브에서 물이 세는 것을 발견해 기술자에게 전화도 했다. 나는 기껏해야 2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임종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체로 복잡하고 버거운 일상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12월 3일,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나서 책을 읽고 있었다. 딸아이가 와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인스타가 난리라고 했다. 아직 귀가하지 않고 있던 남편에게 빨리 집에 오라고 전화를 했다. 제일 먼저 서울 시내를 줄지어 지나가는 탱크가 연상되었다.

 

‘계엄이라고?’

명동에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시스템이 잘 되어있으며, 인터넷 강국인 21세기 대한민국에 계엄이라고? 왜 무엇 때문에? 기가 차고 뜬금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대통령이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깡그리 잡아넣어 다 제거하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계엄을 선포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엄마는 12월 6일 새벽에 돌아가셨다. 12월 7일 국회에서 ‘김건희 특별법, 윤석열 탄핵안’에 대한 표결을 한다고 했다. 남편은 계속 그쪽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자주 방 안으로 들어가 TV를 보는 눈치였다. ‘장모와 엄마라는 한 다리 건너의 차이라 그런 것인가?’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만약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내 마음도 남편의 마음과 다를 것이라 생각되어 그를 이해했다.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픈 마음에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이 추가되었다.

 

그곳에서 이재명이 싫어 윤석열에게 투표한 큰 언니도, 이재명은 싫지만 윤석열에게는 투표하지 않았다는 오빠도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의 열렬한 추종자인 남편과 둘째 언니는 당연히 분노를 표출했다. 모두 ‘왜 그랬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면 계엄은 사람들을 납득시키는데 실패한 것이었다.

 

 

작가 황정은은 12월 3일부터 3월 8일 윤석열 석방까지 일기 형식으로 계엄의 시작과 진행 과정, 자신의 느낌을 적어나간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시간에 따라 체계적으로 복기할 수 있었다. 문장의 많은 부분에서 내 생각을 발견할 수 있어 반가웠다. 단순한 나의 생각에 보태진, 작가의 짧지만 깊은 문장으로 의미와 느낌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계속 화가 났지만 집 안에서만 머문 나에 비해 추운 날임에도 매번 집회에 참석해 힘을 보탠 작가가 대단해보였다.

 

이 책에는 계엄에 관련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나 사회 약자, 이미 국가권력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작가의 일상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단편과 장편 소설을 쓰고, 몸이 아프고, 산책을 하고, 자매들과 밥을 먹기도 한다. 작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읽고 있는 책의 제목도 있다. 항상 남이 읽는, 특히 작가가 읽는 책이 궁금하기에 그 부분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책들을 인터넷 서점과 밀리의 서재에서 검색해 담아 두기도 했다. 그 사이 무안 공항 제주 항공기 사고와 큰 산불이 일어났고, 강동구 싱크홀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습격’이라는 끔찍한 일이 자행되었다.

 

 

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조지 오웰의 글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동력 중 하나로 ‘역사적 충동’을 들고, 이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라고 규정했다. 우리 시대의 작가들에게서 이런 충동이 희귀해졌다. 그것은 역사학이 할 일 아니냐고? 역사는 세상의 길에서도 흐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도 흐른다. 그 마음의 역사를, 소설가가 아니라면 누가 기록할 것인가.

-P.128,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나는 우리 시대의 작가에게 그런 충동이 희귀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쟁이들은 역사와 사회에 무심할 수 없다. 쓰고 싶은 충동이 강한 사람들이라 안 쓰고는 못 배길 것이다. 요즘 작가가 가져다 쓸 수 있는 거시적 서사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적은 것은 사실이다. 빈약하기에 그리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 시국에 그에 관련된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오히려 독자들이 ‘또 그 얘기냐고!’하며 이젠 지겹고 식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은 밋밋하고 재미없다고도 한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외국작가의 작품에 이런 평가는 드물다.

 

소재가 빈약하고 글의 세계를 위협하는 다양한 매체가 많아 작가들에게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젊은 작가들이 조지 오웰과 신형철 평론가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속에도 흐른다’는 말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전쟁이 아니어도, 홀로코스트가 아니어도, 식민지의 백성이 아니어도 지금 우리나라 ‘역사’의 한 장면 장면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반복해서 써주면 우리는 계속 잊지 않고 각성할 것이다. 계엄에 대해 황정은 작가가 물꼬를 터주어 고맙다.

 

한편으로, 지구상에 각종 폭력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평화로운 지금의 대한민국이 너무 좋다. 빠르게 발전해가고 편리해진 세상에 사는 행운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 하나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신경 주사로 통증을 빨리 낫게 하고 약을 먹을 수 있어 고맙다. 급하게 필요한 것을 다음 날 새벽에 집 앞으로 바로 갖다 주시는 택배 기사님들에 너무나 감사하다.

 

그들이 있기에 나의 일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먼저 국민의 일상이 평화롭게 지속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 권력과 정치가 제발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위협받지 않고 지켜지는 사회가 가장 절실하다. 절실함을 이해하고 해결해주는 것이 대통령이 할 첫 번째 일일 것이다.

 

[화가 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속이 뒤집힌다. 남의 삶을 조금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 목숨을 이런저런 전선으로 내모는 계획을 세우면서, 사람을 납치해 고문하고 없애라 명령하면서, 수많은 목숨이며 삶을 전쟁에 쓸어 넣을 계획을 세우면서, 그 머리와 가슴에 ‘사람’이 없을 수 있을까. 자신 말고 누구도 피 흘리는 생명체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는 그게 될 것이다. 타인의 삶과 고통에 닿는 감각이 발달하지 않는 삶, 그럴 의지도 없는 마음으로는 그럴 수 있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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