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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의 나라
유홍종 지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고전 로맨스 소설은 언제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 중독성이 강하다. 애잔하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사랑이야기를 현실에선 쉽게 보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경남 합천의 옛 가야 널무덤에서 도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적(오카리나와 비슷한 악기)에 새겨진 8언 시가 해석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취토적이라는 고서가 공개되면서 이젠 그 토적의 의미가 아사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아침이라는 뜻의 아사, 학문과 지혜가 뛰어났던 책사이자 참모였던 그녀. 그녀는 우리에게 잊혀진 가야, 다라국의 마지막 왕녀가 되었다. 이야기는 아사가 신라의 설오유 장군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쉬운 사랑이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는 것처럼, 그녀와 설오유 장군은 만남은 짧았지만 어떤 사랑보다 아름다웠고 강렬히 기억에 남았다. 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그들의 운명이 빨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픽션과 논픽션을 적절히 섞은 아사의 나라는 흔하디 흔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고등학교때까지 배웠던 역사는 단편적으로 나눠서 배웠기에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드라마 사극으로 보여지는 이야기는 잘려진 그 시대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사의 나라는 그 단편들을 짜맞춰 주었다. 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태까지 내가 봐왔던 역사 드라마를 모두 엮을 수 있었다. 아사의 나라는 아사와 설오유 장군과의 사랑만을 담은 것이 아니다. 시대적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보여주면서 아사가 겪는 상황을 이해시켰고, 그녀의 훌륭했던 판단들을 보여주었다. 설오유가 전쟁으로 출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사는 백제의 볼모로 잡혀가게 되고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가 볼모에서 백제 의자왕의 후궁이 되고, 그녀가 거처하는 몽루각에서의 생활에서 그녀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설오유 사이의 딸, 사비를 백제의 공주로 키워야하는 설움과 거짓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빠른 긴장감과 뒤따르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미었다. 그녀의 신념과 염원을 이어받은 딸, 사비. 누구보다 뛰어난 예언가, 사비는 아사의 꿈을 이뤄주었고, 그녀를 기억했다.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운명은 믿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미 제 길을 따라 살고 있지 않아요? 마치 물이 골을 따라 흐르는 것처럼..."-p.43 토적의 음률은 영원히 설오유와 아사를 기억할 것이다. 담백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격한 감정표현보다는 모든 것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격식있는 기품을 지닌 아사와 사비.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이젠 영원히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