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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섣부르게 판단하고 덮어버리는 책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내가 오늘에서야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처음에 흥미가 없어진 책이라도 무조건 끝까지 붙들고 읽어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난해한 책이라 느껴지는 책들은 저자의 신선한 발상을 독자가 쉽게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괴리감일 뿐이었다. 끝까지 읽고 책장을 덮을 때쯤에 나는 저자가 하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책의 첫 시작이 어떤 것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난해하다 못해, 비위가 약한 나에게는 울렁증까지 동반할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수가 누구지? 진이 누구지? 정신없이 헷갈리는 세상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흐름을 따라 읽다보면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며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었다. 현실 같지 않으면서도 현실이 아니라 부정할 수도 없는 이 이상한 세계가 전혀 낯선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태어난 순간부터 쓰레기라 분리해버리고 인격적인 감정은 말살해버리는 세계에서 재활용이란 단어가 시인이라는 단어가 디저트라는 단어가 비인격적이고, 끔찍해서 아마도 흔하디흔한 그 단어를 당분간 듣는 것조차 싫어질 거 같다. 늙지 않는 시간 속에 멈춰버린 진과 늙을 대로 늙어버린 수가 겪은 고통의 시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있었다.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책임감을 가지고 잘 키워야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무시하면서 그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너무나 자극적이지만 그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 고통의 시간 속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나리란 희망마저 없다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암울하고도 고독하고, 지독한 현실에서 깨달음이란 없었을 것이다.
너는 그냥 변해. 마음 놓고 변해가. 대신 내가 변하지 않을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원히 이 모습 그대로 있어줄게. [p.218] 수와 헤어져도 어떻게든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자신이 수가 기억하는 그 모습으로 있겠다고 말하는 진의 한마디는 어느 달콤한 고백보다도 매력적이었다. 생체실험으로 태어난 아이들뿐만 아니라, 약물실험의 피 실험자가 된 진과 더 좋은 유전자를 위해 모성애란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아이를 낳고, 늙어버린 후에 생명체가 아닌 쓰레기로 분류된 수는 이기심이 낳은 문명발전의 희생양들이었다. 보상받지 못할 시간들을 살아온 그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이 전해 준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그런 현실이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SF소설 같기도 하고, 현실의 한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소설은 미래 소설 특유의 불안감을 불어오기도 하면서 현실적이지 않지만, 지금의 현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