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전쟁소설이라기에 처음부터 읽기가 두려웠다. 전쟁소설은 암울한 배경에 도저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비참함의 역사적인 근거로 구체화했기에 소설을 읽을 때면 도저히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울한 소설에서 재미란 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찾아서도 안될 거 같은 느낌이 강했기에 오히려 전쟁이나 식민지화시대의 소설들을 기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섭입견을 한번에 무너뜨린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에게 쓴 편지형식으로 되어있었다. 주인공인 '줄리엣이 친애하는 편집장, 시드니에게' 또는 '도시가 줄리엣에게' 라고 시작되는 편지들은 날짜별로 분류되어 시간적인 흐름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어찌나 상세하게 썼던지 편지를 쓰는 이나 받는 이에게 그 편지 속의 상황이 마치 실제로 겪은 일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지금이야, 핸드폰 문자로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시대지만 오래 전 그 시대에는 정말로 편지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것을 상상해본다. 열심히 쓴 편지를 받아든 이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는 모습을. 하지만, 정말 이렇게 세심하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로 모두 표현하려면 대단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건지 섬의 이야기를 전쟁소설로 유명해진 베스트 작가, 줄리엣이 그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을 잡으려는 시기부터 그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편지로 엮었다. 

같은 시기의 상황들을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겪은 입장에서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의문들이 하나씩 해결되었다. 나는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을 묘사한 소설들을 좋아하지만, 항상 진행이 느리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면에서 이 책은 의외로 다양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시간의 흐름이 느리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암울했던 그 시기에 건지 섬에서는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희망을 얻으며, 행복할 수 있었다. 작은 소모임으로 시작된 문학회 모임의 중심엔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그녀는 재치와 발랄함과 순수함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고, 그 누구보다 강했다. 무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정한 것이라면 올곧게 맞설 수 있는 기질. 나도 줄리엣처럼 그녀의 흔적들 속에서 마치 그녀와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수용소에서 빨리 돌아오길 함께 기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서운 속도로 책 속에 빨려들어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남에게 내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은 글로 쓰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솔직하게 듣고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편지가 좋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했다. 나도 이젠 문자를 편지형식으로 써볼까? 무참했을 법한 공포의 시간들을 겪었고, 힘든 시기를 견뎌낸 그들은 지극히 개성적인 성격으로 즐거움과 유쾌함 그리고, 친근함과 편안함을 주었다. 처음 줄리엣이 건지 섬을 방문했던 마음 그대로 나도 건지 섬을 방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줄리엣이 건지 섬에서 행복을 찾은 것처럼 나도 행복을 찾고 싶은 작음 바람과 함께.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p.20] 줄리엣이 도시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처럼 이 책이 어울리는 독자에게 찾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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