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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할머니 레시피
이선영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1.
고3 때, 긴 등교시간에 지쳐 학교와 가까운 외할머니댁으로 짐을 싸들고 간 적이 있다.
그리곤 두 달 동안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그 두 달의 시간보다 활기찬 아침을 보낸 적이 없다.
일찍 일어난 할머니와 가까운 학교 덕분에 아침엔 늘 여유가 넘쳤고, 평소에 챙겨먹지 않던 아침밥도 곧잘 먹었다.
매번 고봉밥이었던 것이 부담이었지만 이 맛있는 음식들을 어떻게 남기나 아까워하며 1시간에 걸쳐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높이 쌓인 밥과 푸릇푸릇한 반찬들을 먹으며 할머니와 아침부터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기억해보면, 상위에선 친구와 나눌 수 없던 이야기도 할머니에게 곧잘 했으며,
할머니도 딸에게 할 수 없던(어쩌면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내게 (대신)해주시곤 했다.
2.
왜 하필 이탈리아 '할머니'일까,
궁금해하며 펼친 책.
작가는 진짜 이탈리아인들의 식탁이 그리웠고, 그것을 느끼고 싶었다 했다.
돌이켜보니 나도 '고향'이 그리울 때 늘 할머니와 함께 했던 그 '상'이 생각났다.
허름하지만 늘 가득 차있던 곳.
할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것을 더듬어보면 외가의 식탁이 보이고 우리집의 식탁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그 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그러니까, 작가는 이탈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
이탈리아 할머니의 레시피를 그렇게 식탁을 들여다보면서
이탈리아를 수십 년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그곳의 삶이 참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 중
우리가 필요로 하는 '먹는' 시간은 고픈 배만 채우는 시간이 아닌 영혼도 함께 살찌우는 시간이 돼야 한다.
는 구절이 있는데 그들은 먹는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만드는 시간 또한 즐기면서 보낸다.
부유해서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풍요로운 이탈리아 할머니들이었다.
4.
문화차이겠지만, 우리나라 할머니들도 할머니가 될 지금의 우리도
마음이 풍요로웠으면 한다. 그렇게 하루 세 번 즐거웠으면 한다.
5.
음식 이야기가 기본이 되는 책이다보니 도전해볼 만한 음식들은 눈여겨보고 레시피도 따로 표시해두었다.
곧 부엌에서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보아야겠다.
6.
우리 할머니도 자주 사용하시는 말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들께서도 손맛의 중요성을 아시는 건지 무엇이든 '적당히' 넣으면 된다고 하시는데,
'적당히'라는 말이 요리에서도, 삶에서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말이지만 우선 부딪히고 봐야지.
그래야 나만의 적당함이 생길테니.
***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결심한 건데,
올해는 꼭 김장철에 할머니댁에 가야겠다.
도란도란, 할머니와 이야기도 나눌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