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나무 숲
권여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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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집 <비자나무 숲>은 팔도기획 등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단편 속 등장인물들의 선과악이 드러나는 상황들은 어쩌면 내 이야기같기도 하고 내 친구들의 모습같기도 하다.

 

1965년생인 작가의 글에서 십대, 이십대를 거쳐 노년의 신선하고도 걸쭉한 대화들이

재미있게, 살아있는 언어로 쏟아진다.

취재만으로도 부족한, 마치 작가가 다 경험해 본 듯한 상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찰진 언어들의 유희가 가득하다.

 

1. 기획출판사 팔도기획의 사무실 풍경과 다양한 인물의 캐릭터가 눈앞에 360도 시각으로

펼쳐지는 '팔도기획'

2. 두 딸과의 심리전과 심 여사와 오 여사의 은반지에 얽힌 그간의 사연들을 아슬아슬한 대화를

통해 노인의 어투로 실감나게 쓴 '은반지'

3.하늘나라에 간 약혼자의 어머니와 동생을 이 년만에 만나 그들과 함께 제주 비자림으로 향하는 

명이의 이야기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

4. 사채빚에 쫓겨 하루살이처럼 위태롭게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미스 강과 그녀의 친구 상미,

은찬. 빛바랜 청춘의 이야기 '길모퉁이'

5. 애를 지우기 위해 사채로 수술비를 빌려 빚쟁이가 된 석호와 은혜 그리고 그들에게 납치된

여자. 그들의 거칠고 부드러운 말투로 삶의 시소를 타는 '소녀의 기도'

6. 대학의 연구실에서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한 '병신같은' 양숙현과 아직도 릴레이처럼 반복되는 또다른 그들의 이야기 '꽃잎 속 응달'

7. 대학 룸메이트 경은과 나, 청춘의 꿈을 쫒아 함께 했던 이십대의 이야기  '진짜 진짜 좋아해' 

 

293페이지로 끝나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여러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한

간접체험으로 글에 동화된다.

타자에 대한 연민과 이해 그리고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또다른 삶의 이력들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뛰어난 필력을 만나볼수 있다.

읽다보면 때론 킥킥거리게 하는 웃음이, 때론 두근거리는 아찔함이 생겨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단편집이다.

바람 속 봄꽃처럼, 밤바다의 어린 물고기처럼 그렇게 대책 없이 불안한 젊은 날에 문득 어디선가 벼락같은 다스함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벚꽃이 딱딱한 가지 위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간처럼 몸속에서 끌어올려진 물기가 아름답고 하늘하늘한 촉감의 기적을 만들고 어느 순간 그것은 감격적으로 톡 터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영겁처럼 기나긴 인내와 응달의 시간을 견뎌야 하리라.
-꽃잎 속 응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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