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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평점 :
인간이 조물주를 동경하는 구체적인 방법일까. 인간에게는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 내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있는것 같다. 노래를 작곡하고, 조각을 하며 영화를 찍고, 글을 쓴다. 동시에 그런 행위들은 다른이들에게 기쁨과 분노, 우울함과 절망같은 수 많은 감정들을 운반한다. 이런 창조라는 능동적인 기술과 노력이 예술이라는 불꽃으로 다른이들에게 다가갈때, 우리의 삶은 단순한 흑암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인간의 무한한 미에 대한 갈구와 의문을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그만의 격조 높은 시적언어와 빼어난 감수성으로 우리 앞에 고스란히 되살린다. 그가 보는 현실공간에서는 귀로 듣는 것마다, 코로 맡는 것마다, 손으로 잡는 것마다, 토해내는 숨결마다 시가 되는 듯하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조이스의 유년기에서 대학시절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는 종교적, 지적, 예술적 고뇌와 마찰들을 자서전적 또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며, 조이스 특유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통해 그가 어떻게 그 마찰이라는 미로에서 탈출구를 찾아 빠져나오는가 하는 과정을 그린다. 어릴때 부터 자아의식이 남달리 강해 보이는 조이스는 당시 아일랜드 청년 모두가 겪는 정치적, 종교적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기 보단, 단순히 그 옆에 조용히 표류하는 하나의 배로 남고 싶어한다. 이러한 조이스의 자기격리의 용기는 자기의 정신의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삶과 예술의 양식에 대한 목마름과(378), 권위와 존경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라는 한 상징에 대해 거짓된 경의를 표하기 싫은 진실된 자의의 숭배에서 비롯 되었다 할 수 있다(374).
책의 말미에 조이스는 <침묵, 유배, 간계>라는 확신의 단어들로 앞으로 펼쳐질 그의 구체적 탈피행로를 설명하며, 그러한 그의 선택은 순간적이거나 표면적이 아닌,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친 겸허하면서 꾸준한 자기성찰에서 빚어진 <자유>라는 완성된 조이스 그만의 인생관을 보여준다. 다분히 몽환적이기 까지한 이 한 <예술가>의 앞날을 보며 한 점의 윤곽조차 찾기 힘들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삶의 목표를 추구하려는 그의 선택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미소 짓고 싶다. 또 가식적인 미, 특히 성형수술같은 육체의 미에 대한 관심이 전대미문으로 최고조에 이른 이 시대, 그럴수록 정신이나 영혼은 약화되고 황폐해지고 있는 이 시대, 어떤 고통과 인내의 터널을 통과했다기 보다는 단순한 재미와 흥행을 위한 가벼운 시도들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조이스는 <예술가의 길>에는 그렇게 통과하기 쉬운 <넓은 문>만 있지는 않다고 우리에게 얘기해주는것 같다.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당신에게 나는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