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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8권의 사람 -<한국의 글쟁이들>을 읽고
럽투르니에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시장놀이를 하면 나는 서점 주인이 되었다. 어떤 친구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어 옷가게를 열었고 어떤 친구는 냉장고에서 간식거리를 꺼내어 식당을 차렸다. 나는 종이를 한 장 접어 앞면엔 제목을, 뒷면엔 권장가격을, 안쪽엔 시덥잖은 이야기를 써서 팔았다. 사실 책을 파는 서점 주인보다는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저술가 역할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책을 쓰는 저술가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저술가 18인을 취재하고 그들을 새롭게 조명한 <한국의 글쟁이들>이다. 저자 구본준은 <한겨레> 사회부 기동취재팀장을 거쳐 문화부 대중문화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술가가 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글로 먹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안정적인 교수직에 있으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글로 먹고 살겠다 결단하고 글쓰기를 계속한다는 건 모험이다. 미술 저술가 이주헌의 경우 출판사에 취재비용으로 1천만원을 요구하여 선인세로 받고 온 가족과 유럽 여행을 떠나는 모험을 한다. 그의 기획은 시대의 요구와 맞아떨어져 결과물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기행>이 히트를 치고 저술가의 길이 열린다.
일단 저술가가 되고 나서는 방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저술하기 위해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한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은 나로서는 그들 집안을 가득 메우는 책들, 기록들이 놀랍기만 하였다. 저녁에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내가 흉내도 내볼 수 없는 시간 관리였다. 그들은 그렇게 얻은 시간으로 깊이 독서하고 지식을 재구성하며 생각을 다듬어 창작을 한다. 효율적인 시간 사용을 위한 자료 정리법이나 집필 노하우는 신기하다 못해 신비로웠다. 국문학 저술가 정민의 경우, 의사들이 쓰는 환자 차트를 꽂는 거치대를 사서 자료 차트를 꽂고 빙빙 돌려가며 사용했다.
구본준에 따르면 이 18명의 저술가들에겐 ‘전달력’을 중요시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학자들이 연구해 논문으로 펴내는 ‘아카데미즘’적 글쓰기의 전문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쉽고 정확하게 쓰는 ‘저널리즘’적 글쓰기로 이어서 대중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논문으로 쓰거나 기자들이 기사를 써서 알릴 수 있는 지식보다 저술가들이 대중적인 책을 내서 전할 수 있는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다. 지식에 더해진 스토리는 생명력이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호소한다.
내가 볼 때는 그들의 얼굴 사진에서도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지만 부담 없이 편안한 인상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 특유의 즐거움이 묻어난 얼굴인지 모른다. 재능을 사용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겠는가? 그들의 손엔 펜이 있었고 그 펜을 사용함으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얼마만큼 준비하고 공부하였는지 고민해 본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공부와 독서를 배우기 위해선 무릇 사계의 정통한 사람을 찾아가 고개 숙이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부족했던 듯하다. 18인의 저술가들 중 내가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저자는 NGO 저술가 한비야 밖에 없었다. 죄송하지만 17인의 저술가들은 이름을 아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물론 선정된 저술가들의 저술 분야가 역사, 미술, 전통문화, 교양과학 등으로 방대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글쟁이를 만난 것은 새로운 책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회가 된 뜻 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