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Simple
오노 나츠메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의 내용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싸움을, 여자들은 연애를 떠올린다. 확실히 그런 만화들이 많다. 심심풀이나 오락용으로 보는 만화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화는 제 9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예술의 한 장르이다. 표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오노 나츠메의 만화를 읽고 만화가 담을 수 있는 내용의 폭이 넓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초기 단편에는 가족애라든지 일상을 다룬 이야기가 많았다. 아버지가 아들의 도시락을 싸주는 이야기, 어느 부부의 외출 이야기는 소박한 감동을 주었다.

그렇다면 하고많은 장르 중 만화만의 독특함은 무얼까? 가장 큰 독특함은 글과 그림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만화가는 무언가 설명하고 싶을 때 글을 쓸 수 있다. 침묵하고 싶을 때 그림을 그려 보여줄 수 있다. 이 두 요소를 ‘컷’이라는 칸에 넣고 나열하면 이야기가 자연스레 진행된다. 이러한 만화의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비록 대사가 짧거나 그림체가 단순하다고 하더라도 단순하지 않은 내용을 전할 수 있다. 그것을 잘 보여준 만화가가 오노 나츠메인데 그녀의 그림체와 대사는 매우 간결하다. 그러나 내용은 심오하다.

만화는 흔히 희극적인 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가 특히 감동적으로 본 오노 나츠메의 <not simple>은 ‘비극’을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안이라는 불행한 남자가 죽고 친구인 짐이 그의 인생을 소설로 쓰는데, 제목이 'not simple'이라는 내용이다. 짐은 이안의 인생을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표현하며, 소설로 쓰겠다는 말도 몇 번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가 이안의 인생을 보게 되는 것은 영화도 소설도 아닌, 만화를 통해서이다. 만화이지만 그의 생이 가볍거나 우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짐은 소설가였고 오노 나츠메는 만화가였을 뿐이다. 내가 화가였다면 캔버스에 물감으로 이안의 삶을 표현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세상을, 삶을, 사람을 사랑하면서 세밀하게 관찰하고 창작하는 것이다. 짐은 이안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난 꼭... 소설의 소재로 삼겠다고 네 이야기를 들으려는 건 아냐. 너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이지.”, “네 인생을 소설의 소재로 쓰는 게 아니라 너를 소설로 쓰겠어.” 이안이 죽은 지 1년 후에 짐 역시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 자신이 이안의 비극과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시대에 디자인과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진정한 사랑이 담긴 작품을 찾기는 어렵다. 수많은 광고들이 상품을 포장해서 보여준다. 상품을 사면 진정한 사랑과 행복, 미와 성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현혹한다. 이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닐까. 잘 안 팔려도 좋고 서툴어도 좋다. 나는 한 남자의 비극적인 인생에 관심을 가지는 그런 만화가 좋다.  현대인들은 섬처럼 고립되어 외롭다. 그렇다면 예술은 ‘사랑 없음’이라는 지점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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