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 인터뷰집
마티포포 지음, 정유미 외 엮음 / 포포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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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일을 지키고 싶은’ 문장에 호기심이, 방법을 찾고 싶은 간절함에 책에 스며들었다.

기혼 여성 10명의 고군분투의 역사가 깃든 페이지를 쉬이 넘기기 어려웠다.

"밤 10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어요." 제작 비하인드를 읽다가 눈물이 흘렀다. 한 방울 남은 체력으로 쏟아낸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가사노동에 육아가 더 해진 기혼 여성에게 '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은 구호와 같다.

한 직장에서 20년을 버틴 이혜선 님은 커리어 황금기와 육아 시기가 겹쳤을 때 “제 양 다리에 모래주머니가 묶여 있었던 것 같았어요. 모래주머니가 묶여 있으면 달릴 수 없잖아요”라고 했다.

여러 이유로, 돌봄 노동을 도맡아 하는 기혼 여성들은 어디까지 희생하고, 어디쯤에서 멈춰 서게 될까. 오늘 밤 아이 코에 콧물이라도 흐르면, 내일 출근할 수 있을까 전전 긍긍하는 나 역시 당사자가 되어보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을 느끼게 됐다.

5년의 공백기를 뛰어넘어 재취업에 성공한 안 자영 님의 “엄마가 된 이후로는 불가능의 영역에 들어간 거죠”라는 말처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아이에게도 회사에도 참 죄송한 일뿐이다.

벼랑에서 한 발자국 잘못 디디면 ‘82년생 김지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책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엄마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서로를 향한 응원만으로는 기혼 여성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잘 바뀔 것 같지 않다.  생활 밀착형 정책과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한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계속 일하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라는 질문이었다.

각자의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이 제안은 워킹맘들이 일을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들이 아닐까 싶다.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제대로 소리 내기 위해 메모해둔다.

육아휴직 기간이 연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이혜선 님은 “육아휴직 기간 1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2~3년 기간을 쪼개서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라고 했다. 최유진, 안자영 님은 일하는 여성들은 무엇보다 믿고 신뢰할 수 있을만한 보육 기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적으로는 가끔 뉴스에 고발되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어, 국공립 어린이집만이 대안인가에 물음표가 찍히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돌봄 부담이 여성에게 쏠리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 상담 때 0순위로 엄마를 찾지 않는 분위기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기억에 남는다.

워킹맘의 불모지 국회에서 일하는 장명희 님은 제도적 변화와 인식 개선이 발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유연근무제, 유연 출퇴근제, 단축근무제를 사용한다고 해도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라, 당연히 써야 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육아는 부부 공동의 책임, 임신과 출산 시 배려가 직장에 피해 주는 일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담은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사실은 대단한 사진관을 운영하는 이민정 님의 제안.

“일하는 시간을 더 줄여야 해요. 가족 중 누군가 혼자서만 오래 일하니까 누군가는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다들 나눠서 짧게 일하고 아이도 함께 키우면 좋겠어요. 아이 키우는 사람에게 가장 부족한 게 시간이니까요. 시간을 줄 수 있는 제도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끝으로 싱글맘 송지현 님의 인터뷰는 나의 편협한 세계를 확장시킨 계기가 됐다.

“여전히 한 부모 가정의 문제가 오직 경제적 빈곤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어요. 한 부모 가정은 다원적인 취약성이 있어요. (중략) 특히 초기 한 부모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 같은 갈등 상황이나 부모의 사망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노출되기도 하고요. 취약성이 너무 다양한데 오직 경제적 빈곤 하나만 가지고 모든 제도가 꾸려져 있다는 게 정말 납득이 안돼요.”

 

엄마의 서사를 기록하는 <마티포포>님들의 열정에 깊이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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