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독트린
리처드 르원틴 지음, 김동광 옮김 / 궁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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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진화론에 대한 소개서들을 읽으면서, 진화론이 참이며 그런 진화론을 바탕으로 저명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진화론을 받아 들여야 하고, 진화론이 끼친 다양한 학문의 긍정적인 부분을 보고 배워한다는 것이었다. 

국내 유명 생물학자들의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출간 150주년 기념으로 여러가지 다윈과 진화론에 대한 재조명을 하는 것을 보며 아직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서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좋은 생각들을 많이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만 생각을 했었다. 진화론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진화론의 여러가지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 학자들의 생각에 대한 긍정적인 회의주의를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R.C. 르원틴의 《DNA 독트린》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윌리엄 해밀턴,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과 같은 진화론의 대가들의 저작들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들의 근거 부족과 기계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유전자 환원주의에 대한 부분을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현대 생물학의 근저는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분자 생물학은 그 선두에 있다. 현재 진화론을 이야기한다면 단연 유전자에 대한 것을 빼 놓을 수 없다. 유전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유전자 환원주의라는 아주단순화된 논리로 해서 유전자의 비밀을 밝혀내면 인간에 대한 모든 물음의 답까지 구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정말 유전자의 속성을 밝히면, 인간의 본성과 기원을 알 수 있을까? 

도움은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유전자만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특성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원인과 작인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떨쳐버리고 종합적으로 인간에 대한 설명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생물학은 대중들의 의식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 생물학이 인간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하면서 정작 인간과 생명을 소외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대 생물학의 방향에 대한 성찰을 하며 과학자들의 책무와 도덕성에 대해서 올바른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루어진 내용들은 모두 현대 생물학의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대한 것이었다. 그 편향이란 우리의 존재, 즉 질병과 건강, 가난함과 부유함, 그리고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사회 구조까지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DNA 속에 부호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비유를 빌리자면, 우리는 우리의 DNA, 육체, 그리고 정신에 의해 창조된 아둔한 로봇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자신 속에 존재하는 내적 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관점은 이른바 '환원주의(reductionism)'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깊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여의 일부이다. 환원주의란 이 세계가 작은 부분과 조각들로 나뉘어질 수 있으며, 그 조각들은 더 큰 사물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다. 가령 이 견해에 의하면, 개인이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는 개별 인간의 특성의 발현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개인들의 내적 특성이 원인이며, 사회 전체의 특성은 그러한 원인들의 결과이다. 생물학적 세계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관점은 단지 만물의 중심에 개인을 위치시킨 18세기 부르주아지 혁명의 이데올로기의 투명에 불과하다. 
(p189, 사회적 행위로서의 과학)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적 구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유전자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복잡한 뇌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그러한 뇌가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전자는 인간 본성. 사회 본성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이 이미 가능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아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한계와 가능한 형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시몬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는 말장난을 연상하지만 매우 심오한 경구에서 인간은 '그 본질이 본질을 갖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역사는 우리를 한계 짓는 유전자의 힘과 환경의 힘이라 일컬어져 온 좁은 제약들을 훨씬 능가해 왔다. 자신이 동의했던 영국선거법 개정법안을 통해 영국의 정치적 발전을 제약하는 자신의 힘을 파괴시켰던 상원(House of Lords)처럼, 유전자도 인간 의식의 발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개인과 그 환경을 결정하는 자신의 힘을 양도했다. 그 힘은 전혀 새로운 수준의 인과관계, 즉 자신의 법칙과 사회적 활동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되고 탐구될 수 있는 독자적인 본성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대체되었다. 
(p216 ~ 217, 사회적 행위로서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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